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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칼럼

구원관 -신구교 비교

by 이덕휴-dhleepaul 2022. 7. 12.

2.2.1. 그리스도교에서의 구원[편집]

2.2.1.1. 가톨릭의 입장[편집]

(이 문어에 오류가 너무 많아서 수정하기 힘듭니다. 아래 내용은 가톨릭 교회의 입장이 아닙니다.)
가톨릭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성사를 받으면 이제까지의 모든 죄가 사함을 받는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세례로 사함을 받고도 이후에 믿음에 맞는 행실을 하지 않고 대죄를 저지르고 고해성사 등으로 죄사함을 받지 않으면 지옥에 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또한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언급한대로, 구원에 대한 확신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자칫 이단적 교리로 타락하게 만드는 여지가 있는 것으로 본다.

구원의 영원성, 불가변성을 믿는 개신교(특히 칼뱅주의)에서는 구원의 취소는 만년 뜨거운 논란거리이지만, 가톨릭에서는 위에서 언급한대로 논란거리도 되지 않는 주제다. 구원의 취소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일부) 개신교의 교리는 가톨릭 입장에서는 성경과 초대교회의 가르침에서[1] 어긋난 이단적인 것이라고 본다. 다만 개신교 신학자들이 흔히 꺼내오는 '펠라기우스가 주장한 구원의 취소'와는 다른 부분이니 주의를 요한다. 펠라기우스의 주장은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믿어도 인간의 행위가 뒷받침이 안 되면 구원이 취소된다는 것이고 그런 주장은 가톨릭에서도 존경받는 교부 중 하나인 아우구스티누스가 일찍이 이단 판정을 내렸다. 구원의 취소가 가톨릭 구원관에 등장하는 이유는 인간이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는 것에는 그에 뒤따르는 일종의 '자유의지'가 어느 정도 필요하다는 관점에 있다. 대충 살다가 하느님의 은총을 저버리고 본인의 믿음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2] 이에 대한 설명은 이신칭의 문서의 천주교의 입장 파트를 참조하면 된다.

가톨릭에서는 개신교(특히 칼뱅주의)의 구원관을 반박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성경적 근거를 제시한다.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이라야 들어간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그날 먹을 양식조차 없는데, 여러분 가운데 누가 그들의 몸에 필요한 것은 주지 않으면서, “평안히 가서 몸을 따뜻이 녹이고 배불리 먹으시오.” 하고 말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믿음에 실천이 없으면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그대에게는 믿음이 있고 나에게는 실천이 있소.” 나에게 실천 없는 그대의 믿음을 보여 주십시오. 나는 실천으로 나의 믿음을 보여 주겠습니다. 그대는 하느님께서 한 분이심을 믿습니까? 그것은 잘하는 일입니다. 마귀들도 그렇게 믿고 무서워 떱니다. 아, 어리석은 사람이여! 실천 없는 믿음은 쓸모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싶습니까?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 이사악을 제단에 바칠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그대도 보다시피, 믿음이 그의 실천과 함께 작용하였고, 실천으로 그의 믿음이 완전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아브라함이 하느님을 믿으니, 하느님께서 그것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는 성경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느님의 벗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보다시피, 사람은 믿음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니라 실천으로 의롭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창녀 라합도 심부름꾼들을 맞아들이고 또 그들을 다른 길로 내보냈을 때에 실천으로 의롭게 된 것이 아닙니까? 영이 없는 몸이 죽은 것이듯 실천이 없는 믿음도 죽은 것입니다.

야고보서 2장 14-26절

2.2.1.2. 개신교의 입장[편집]

아마 '구원'이란 말처럼 오용되고 오해되는 성경용어는 없을 것이다. 우리 신자들 중 더러 세상에 구원을 전한다고 하면서 우스꽝스러운 구원을 전한 탓이기도 하다. 그 결과 '구원'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경우와 조롱의 대상이 되는 경우까지도 있다. 우리는 그 말을 저속하게 된 좁은 개념에서 건져 낼 필요가 있다. '구원'이란 위대하고 고상한 말이다. 구원은 자유다. 그렇다, 또한 새롭게 함이다. 근본적으로 전 우주의 갱신을 뜻한다. - 존 스토트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하려 하심이라
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요한복음 3장 16~18절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3]

요한복음 6장 40절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로마서 10장 9~10절
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9.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에베소서 2장 8~9절
성경에서는 구원에 대해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으며, [4] 구원을 주제로 삼아 다각도에서 접근하는 경우를 쉽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누가복음서 1장의 아래 내용이다. 예수의 탄생 약 6개월 전에 세례자 요한이 태어나 이스라엘에 먼저 사역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아버지인 즈가리야가 요한을 낳자 마자 예언한 내용이다.
67. 아기 아버지 즈가리야는 성령을 가득히 받아 예언의 노래를 불렀다.
68. "찬미하여라, 이스라엘의 주 하느님을! 당신의 백성을 찾아와 해방시키셨으며,
69. 우리를 구원하실 능력 있는 구세주를 당신의 종 다윗의 가문에서 일으키셨다.
70. 예로부터 거룩한 예언자들의 입을 빌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71.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또 우리를 미워하는 모든 사람들의 손에서 우리를 구해 주려 하심이요,
72. 우리 조상들에게 자비를 베푸시며 당신의 거룩한 계약을 기억하시고
73. 우리 조상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대로
74. 우리를 원수들의 손아귀에서 구해 내시어
75. 떳떳하게 주님을 섬기며 주님 앞에 한 평생을 거룩하고 올바르게 살게 하심이라.
76. 아가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예언자 되어 주님보다 앞서 와서 그의 길을 닦으며
77.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길을 주의 백성들에게 알리게 되리니
78. 이것은 우리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의 덕분이라. 하늘 높은 곳에 구원의 태양을 뜨게 하시어
79. 죽음의 그늘 밑 어둠 속에 사는 우리에게 빛을 비추어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주시리라."
80. 아기는 날로 몸과 마음이 굳세게 자라났으며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

칼뱅 등의 신학자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초기 예정설과 은총론, 그리고 마르틴 루터의 이신칭의 사상을 종합하여 가톨릭식 의화 교리에 내재된 구원의 취소라는 개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크게 훼손하는 것으로 여겼다. 개신교 교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구원은 하나님의 절대 주권에 있는 것이므로 한 번 구원은 영원한 구원이며 임의로 취소되지 않는다는 것이 개신교식 이신칭의 사상에 내재된 개념이다. [5]루터파든 칼뱅파든 웨슬리안이든 침례회든 성공회든 대부분의 개신교 교단들은 이신칭의를 절대적인 진리로 가르친다. 다만 그렇다고 개신교 쪽에서 성화를 중시하지 않는다고 여기면 너무 큰 비약인 것이 기본적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거듭난 사람이며 이들의 선행을 칭의의 증거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따르면 믿는다고 입으로만 떠들고 막 사는 사람은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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