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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칼럼

네 십자가는 네가 지어라

by 이덕휴-dhleepaul 2022. 8. 17.

십자가를 지는 것

복음 곳곳에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라는 단어를 언급하셨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짊어지신 나무로 된 십자가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라는 단어를 언급하실 때마다, 사실 그것은 그 분의 제자로서 우리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를 말씀하신 것이었다. 진실로 이 십자가를 의미하셨고, 우리가 그것을 짊어질 때 그 분의 진정한 제자가 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 내용을 살펴보자.

누가복음 14:25-27, 33
“수많은 무리가 함께 갈새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16:23-25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탄아 내 뒤로 물러 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마태복음 10:33-39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리라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위 구절에서, 예수님을 따르면 사회나, 우리와 익숙한 부모님 및 자녀와 불화가 생기기도 하는 것 같다. 그러한 유쾌하지 못한 상황이더라도 우리가 따라야 하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십자가를 지고, 기독교인이 되는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내하지 않고서는 진실로 예수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특히 이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고, 마음 속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사람들과 그들의 철학과 이론이 뭐라고 하든지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겠다는 신중한 결정을 내리는 것이 중요하다. 육으로서 이렇게 사는 것이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아마도 우리 모두는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하겠지만,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과 그 분의 말씀과 타협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에, 때로는 모든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는 일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 우리는 뒤로 물러서거나 퇴보하지 말고, 우리의 신앙의 십자가를 져야 한다. 무엇이 더 강한가? 무엇이 더 중요한가? 인간인가, 그들의 이론과 견해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인가? 인간의 이론은 흥했다가 쇠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남아있다. 예를 들어보자. 우리 시대, 우리 “기독교인 사회”에서, 기독교인이 아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세상이 무(無)에서 만들어져서 저절로 진화해 왔다고 믿는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온 것인가? 창세기 첫 장을 살펴보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모든 것을 창조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에는 다음과 같이 나온다.

히브리서 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세상이 말하는 내용(진화설)은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다.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된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으면 된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히브리서에 씌여있듯이 “믿음으로” “믿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다고 되어 있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이 조소의 대상이 되더라도 사람들의 말에 신경쓰지 말고 믿으면 된다. R. T. 켄달(Kendal)은 이렇게 말했다.

모든 기독교 세대는 믿는자의 신앙을 호되게 시험받는 자신만의 오명이 있게 마련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 제 1세대는 나사렛 예수가 구약의 완성이라고 들었다. 이는 특히 유대인이 예배를 드리는 장소를 마주할 때 받아들여야 했던 오명이었다. 예수 탄생후 첫 1세기 때 핵심 쟁점은 예수를 숭배할 것이냐 가이사를 숭배할 것이냐 하는 점이었다. 루터의 시대에는, 누군가가 그 신앙에 의해 정의되느냐 또는 한 일에 의해 정의되느냐가 쟁점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예는 얼마든지 많이 있으니 말이다. 어느 시대든 가장 뜨겁게 다투는 쟁점이 있기 때문에, 소수의 견해가 어리석게 보이게 되고 믿는 자들이 바보처럼 보이게 되는 것이 사실이다” (R.T 켄달 저, 하나님을 믿는 것, 진정한 고전, 17쪽(R.T. Kendal, Believing God, Authentic classics, p.17))

우리가 루터 시대에 살아서 은혜로 구원을 받기 위해 줄 서 있었다면 어땠을까? 우리도 바보라고 불리웠을 것이며 아마도 우리는 목숨을 잃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 또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십자가를 지고 오명을 받아들이기 위해 서 있어야 할 것이다.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간단하다. 여러분의 십자가를 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100% 믿으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따라야 할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고 싶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는 것이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했다. 예를 들어, 이 시대의 가장 뜨거운 화두이며 믿는 자들을 바보로 보이게 만들 수 있는 창조설 대 진화설의 논쟁을 만나면,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메시지를 희석하고, 자신들의 신앙과 타협하는 것을 택한다. 그들은 진화설과 하나님에 의한 창조설 모두를 믿고 싶어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가르침이 아니다. 여러분은 말씀을 믿기 위해 무언가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여러분은 믿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그것을 찾아야 한다. 말씀에 그렇게 명시되어 있을까? 그렇다면 믿어라, 명시되지 않았다면 “전문가”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말을 하더라도 믿지 말아라. 그래야 신앙의 자녀이며 아버지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가능성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는 예를 보여주는 더 많은 구절이 있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보여준다.

디모데후서 3: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디모데후서 4:2-4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경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또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요한복음 17:14
“내가 아버지의 말씀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매 세상이 저희를 미워하였사오니 이는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을 인함이니이다”

데살로니가전서 3:3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요한복음 12:43
"저희는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마지막에 우리는 누구의 영광을 원하는가? 하나님의 영광인가, 아니면 사람의 영광인가? 때로 하나님의 길을 떠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고 선을 행하는 것이고 사람들이 이로 인해 여러분을 칭찬하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의 영광이 가능할 수도 있지만, 그 일이 여러분의 동기로 인해 그렇게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분명 하나님과 사람 모두의 영광이 불가능한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여러분에게 아침에 무엇을 하느냐고 묻고, 여러분이 성경을 읽는다고 답할 때, 조소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뭐가 어떤가? 진화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여러분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다고 말하면, 바보라고 불릴지도 모른다. 여러분이 예수님만이 길이라고 말할 때, 여러분은 종교에 미친 사람이라고 불릴 수 있다는 것이 사실이고 일상이다. 그렇다고 뭐가 어떤가? 여러분이 버스나 기차에서 성경이나 기독교 서적을 읽을 때, 어떤 사람들은 여러분을 이상하게 쳐다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뭐가 어떤가? 성경에서 말하는 내용이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내용과 엄연히 반대되는 점이 있다. 언제나 그랬으며, 믿건데 예수님께서 돌아오시는 그 날까지 이렇게 계속될 것이다. 여러분과 내가 해야할 일은 그저 우리가 누구에게 등을 돌릴지를 선택하는 것이다. 오명을 받아들이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를 것인가, 아니면 성경 메시지를 희석하고 인간들에게 받아들여지기를 원할 것인가?

마가복음 8:38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

누가복음 12:8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로마서 1: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세상은 여러분의 믿음을 필요로 한다. 복음의 메시지, 즉 우리가 가진 보물을 그로 인해 초래될 결과를 피하기 위해 희석하지 말자. 십자가를 지고, 우리 앞에 나타나신 우리의 구세주를 따르자.

타소스 키울라초글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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