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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그리스도인의 경주

by 이덕휴-dhleepaul 2022. 8. 28.

우크나이나 원자력발전소

본문: 신 32:35/ 히 12:1-2/찬 222장

제목: 믿음의 경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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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보면,  그리스도인들이 달려야 하는 경주에 대한 말씀이 나옵니다.

히브리서 12:1-12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우리가 달려야 하는 믿음의 경주는 인내로 예수님에 눈을 고정하고 달리는 경주이다. 촛점을 예수 그리스도에 두고 결승점에 계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달리는 경주이다. 이는 그리스도인들의 경주이다. 사도바울의 말에서 느낄 수 있는 것은 크리스찬이라고 자칭하는 사람이라고 모두 이 경주에서 달리지는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자”고 장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 아닌가?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질문은, 여러분은 어떤 경주를 달리고 있는가? 이다. 다른 종류의 경주도 있다는 말인가?

1.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경주가 있다.

- 예수님을 바라보며 달리는 믿음의 경주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경주이다. 이는 물질주의, 소비주의, 세속주의, 세상의 경주와 반대편에 있는 경주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알고 있어야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속주의, 물질주의, 소비주의의 함정에 빠진다.

- 인류의 가치관을 재정비해서 무가치로 만들어버린 인본주의는 하나님을 배제한 종교이며 세상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도인들 중에서 많은 이들이 인본주의 복음으로 개종하는 현실이다. TV에서 손짓을 하고, 인터넷이 유혹을 하며, 뉴스도 그렇고 동료가 그리한다. 이들 매체에서 소비주의, 물질주의, 세속주의의 복음을 퍼뜨리고 있다. 이런 말을 많은 수의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있다! 여기에 복음의 악화와 그리스도인이 되는 데 치르는 값이 제기된다

2. 하나님의 사람들의 경주

서양 속담에 "성경을 읽기 위하여 양초를 훔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을 읽겠다는 것은 참 아름답고 선하고 거룩한 목적입니다. 성경을 일기위한 목적은 선하지만, 그 수단이 옳은 것인가? 목적과 수단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믿음과 선한 마음 이 외에는 아무 것도 우리의 목적이나 수단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성경을 읽겠다고 양초를 훔친다면 이미 그 과정에서 선한 목적은 변질이 되는 것입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거나 "꿩 잡는 게 매다"라는 속담과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잡으면 된다."는 중국 등소평의 ‘흑묘백묘론’은, 목적 목표 지상주의의 산물입니다. 이것을 인본주의 신앙이라고 합니다. 신앙의 근본이 무엇인가를 중요하게 여긴 것이 소위 근본주의 신앙입니다. 19세기 초에 불어닥친 신앙운동이었습니다. 복음주의라는 신앙운동이 일어난 것에 반대한 미국의 장로교의 입장이었습니다.

당시 천막교회가 교회부흥의 상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천막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고 오직 구름처럼 몰려와서 주님의 이름으로 헌금을 강요하고 미친듯이 부르짓고 할렐루야를 밤새워 부르짓던 오직 부흥에만 속도를 내던 시절이었습니다. 그것 자체를 선과 악으로 구분짓자는 것은 아니지만, 믿음은 속도에 있는 것이 아니고 방향에 있는 것입니다.

목적, 목표만 달성할 수 있다면 불법, 위법, 편법, 부도덕, 비정상, 비상식적 수단과 방법, 과정이 정당화, 합리화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무리 목적이 좋다고 해도 수단과 방법이 잘못되어서는 안 됩니다. 세상 방법과 방식대로 살지 말고 하나님의 방법과 방식(성경)대로 사는 것, 그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성도의 삶일 것입니다.

 3.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입니다. 믿음은 ‘빠름’이 아니라 ‘올바름’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없는 것같지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니라”(고전 9:26)고 사도바울은 말하였습니다. 이어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 함이니라"(고전 9:27)고 두렵고 떨리는 마음을 전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주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고 실천하는 믿음의 자녀는 마음을 다하고 온 몸을 다하여 주 예수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 우리의 믿음의 근본입니다. 시편기자는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하지 아니하시리이다”(시편 51:17).

맺음 -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쓰자

믿음에 가치관이 어디에 있는가? 신앙의 본질이 무엇인가? 내가 무엇을 위하여 이 자리에 있는가를 깊이 반성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우리 만나인은 하나님을 경외하여야 합니다.

"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 때에 갚으리로다. 그들의 환난의 날이 가까우니 당할 그 일이 속히 임하리로다"(신32:35) 하나님을 진실로 사랑하지 않는 것은 내 마음이 허공을 치는 것과 같습니다. 

끝으로 우리 함께 고린도전서 9:22-25을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을 마치겠습니다."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24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승리하되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쓰는 만나인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