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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일체의 비결

by 이덕휴-dhleepaul 2022. 9. 4.

말씀: 빌4:11-13/찬236

제목: 일체의 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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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찬송가 236장(통223) 우리 모든 수고 끝나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 (빌립보서 4:11-12)

1. 세상적 기회와 하나님의 기회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번 맞았으며 세번 태장으로 맞고 한번 돌로 맞고 세번 파선하는테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의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고후 11:23-27)
이런 고난 중에서도 그는 기쁜 쪽, 행복한 쪽, 만족한 쪽을 선택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세상적인 고난은 잠깐이지만

하나님과 함께하는 기회는 영원한 천국입니다. 마음먹기 달렸다는 말이 있습니다. 세상사 고난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즐거움이 끝나면 괴로움이 있기 마련이다. 지금의 고난은 십자가의 영광입니다. 주님께서 고난을 받으신 것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사도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그가 단순히 감옥에 갇혀 있다는 표현을 쓰지 않습니다. 에베소서에 보면 그가 감옥에 있다는 표현을 주안에서 갇힌바 된 것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주안에 있었고---그래서 그 감옥 속에서도 늘 감사하며 찬송하며 지냈습니다. 그래서 바울의 감옥은 감옥이 아니라 하나님께 더 나가기위한 수도원이 되었고, 천국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반대로 만일 어떤 사람이 원망불평하면서 수도원에 있다면 그곳은 감옥과 같은 곳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2.  믿음자의 죽음은 복이있다

계14:13/○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히11:33절/*  11:33-34 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바로 우리에게 그대로 주어집니다. 

-오늘 본문을 자세히 살펴 보겠습니다.

10.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

여기서 빌립보교인들이 나 바울을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라고 하는 말은 빌립보사람들이 사도바울이 어려울 때 물질로 도와준 것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이것 때문에 크게 기뻐하고 있고 또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말을 하고 나니까 마치 지금 빌립보교인들이 바울에게 준 그 물질 때문에 바울이 기뻐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물질이 아니면 기뻐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라고 합니다. 즉 내가 마치 궁핍한 중에 너희들이 준 물질로 인해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합니다.

-- 12절을 보십시오

12.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고 말합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하는 일체의 비결이 무엇입니까?

3.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

13절말씀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이란 말은 상황을 바꾸어 놓을 수 있는 능력이 아니라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안에서 자족하며 만족하면 감사하며 기뻐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족하며 기뻐할 수 있었던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바울은 두 가지 상황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이 육신적으로 풍부했을 때의 상황이고, 또 하나는 육신적으로 궁핍했을 때의 상황입니다.

우리는 육신적으로 너무 궁핍한 상황에 처하면 낙심하고 좌절하여,,주님의 품을 떠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어떤 궁핍한 상황 속에서라도 낙심하고 좌절하여 주님의 품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더 주님을 의지함으로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더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또 사람이 풍부한 상황에 처하면, 교만하고 방심하여 주님의 품을 떠나기 쉽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풍부한 상황에 있더라도--그것 때문에 마음이 교만하여 --주님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어떤 상황에 있더라도 주님 안에 있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면 내가 어떠한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할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고 합니다.

여기서 배웠다는 말은 사도 바울도 처음부터 그렇게 되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처음에 바울도 분명 어려울 때는 낙심하였고, 또 좋을 때는 방심하고 교만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신앙생활을 하면서---그의 신앙이 더 성숙되고 깊어지면서--모든 상황 속에서 자족할 수 있는 비결을 배워갔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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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우리가 지금 바울처럼 이렇게 모든 상황 속에서 만족하고 기뻐하는 삶을 살지 못한다고 해서--우리가 낙담하거나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결론/ 항상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살전5:16-18)

하나님께서 우리를 여러 가지 삶의 과정을 통해서 지금도 우리를 다듬으시고, 더 성숙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모든 삶을 다 주님께 맡기고 살면, 그 언젠가는 바울처럼 그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만족하고 기뻐할 수 있는 삶을 살수 있을 것입니다.

주안에서 모든 일에 항상 만족하며 기뻐하며 살아가시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날마다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주님 안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는 요소가 있다고 할 때, 우리가 기뻐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시선이 우리의 기쁨이 없는 곳에 머물러 있기 때문입니다. 매일의 삶에서 기뻐할 수 있는 요소가 없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기쁨이 없는 곳을 바라보고 있기에 기쁨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바울은 기뻐했던가요? 그렇습니다. 다른 편지들을 보면 그는 계속해서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혔을 때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가 그런 찬양을 불렀던 것은 마음속에 기쁨이 솟아났기 때문입니다. 그가 살았던 환경은 우리와 완전히 다른 환경, 더욱 기뻐할 수 없는 환경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 환경과 자신이 아닌, 주님을 향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가끔 기뻐할 수는 있지마는 항상 기뻐할 수 있는가? 어떻게 쉬지 않고 기도할 수 있는가? 어떤 일에는 감사할 수 있지만 어떻게 범사에 감사할 수 있는가?

  그렇지만 여기 계속해서 말씀하기를『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의미는 우리의 의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이라는 의미는 반드시 그렇게 되리라는 그런 의미도 있는 줄 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