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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지기칼럼

죄로부터 자유함을

by 이덕휴-dhleepaul 2022. 9. 1.

1. 로마서 8장 본문의 주제

(롬 8:1-2)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1)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마11:29, 갈2:19, 롬5:21/찬송: https://mission-school.tistory.com/265

 

Christ

그리스도(Christ) 예수 참조 희랍말로 크리오 (기름부음)란 동사에서 나온 "기름 부은 자"란 뜻이다. 신약에는 이것을 히브리 말로 메시야 "기름 부은 자"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였다. 기름 붓 는 것

kcm.co.kr

사도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하면서 고린도에서 3개월을 보내는 동안에 기록한 서신이 로마인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서기 57년 경에 기록된 이 글은 기독교의 역사를 크게 바꾸어 놓은 기독교 교리를 담아 낸 글이다.

2. 문제 제기 - 왜  자유할 수 있는가?  타당성

롬 1:16-17절  " 16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본문 말씀에 죄와 사망의 법(율법)으로부터 자유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복음 즉, 주님의 말씀에는 믿는 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이 된다고 하였다. 이어서 17절에서 복음의 기재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어서 이 믿음으로 인하여 죄와 사망이라는 법에서 자유함을 얻는다고 하였다. 이 구절은 훗날 개혁의 아들 루터가 로마교회와 결별하는 기재가 되었다.

이것이 바로 사도바울의 율법과 복음에 대한 기독교 교리의 혁신적인 교리해석이다. 나는 이것을 나의 신앙과 신학의 기재로 삼았다. 보다 깊은 내용은 의 관계 나의 논문(사도바울에 있어서 율법과 복음 - 이덕휴 석사학위논문, 그리스도신학대학원)을 참조하면 될 것이다. 이 외에 나의 신학논문 특히 조직신학 분야의 논문 대다수는 '율법과 복음의 주제를 다루고 있다.

3. 사도바울의 선언 -고백 

롬 3:21-26 죄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사도바울의 고백의 하이라이트는 3장 21절로 부터 26절 말씀이다. 말씀에 대한 좀 더 정확한 이해를 위해서 현재 나와있는 성경 주에 가장 신뢰도가 높다고 말하는 KJV(킹제임스 역본)를 봉독한다.

"Righteousness Through Faith" - 믿음으로 부터 하나님의 의에 이른다

21But now apart from the law the righteousness of God has been made known, to which the Law and the Prophets testify. 22This righteousness is given through faith in h Jesus Christ to all who believe. There is no difference between Jew and Gentile, 23for all have sinned and fall short of the glory of God, 24and all are justified freely by his grace through the redemption that came by Christ Jesus. 25God presented Christ as a sacrifice of atonement, i through the shedding of his blood—to be received by faith. He did this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because in his forbearance he had left the sins committed beforehand unpunished— 26he did it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위의 구절에서 핵심은 여전히 26절 말씀이다. 이 말씀에 대한 여러 역본.

Romans 3:26, NIV: he did it to demonstrate his righteousness at the present time, so as to be just and the one who justifies those who have faith in Jesus.

Romans 3:26, ESV: It was to show his righteousness at the present time, so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the one who has faith in Jesus.

Romans 3:26, KJV: To declare, I say, at this time his righteousness: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him which believeth in Jesus.

3) KJV 본문 해석: 26 To declare, I say, at this time his righteousness: that he might be just, and the justifier of him which believeth in Jesus.
로마서 3:26
이 때, 나는 그의 의를 선언한다.
이 목적은 하나님의 은혜, 자비, 선함을 드러내는 복음서 아래 "이때" 하나님의 의를 선언하는 것으로 더욱 설명된다.
예수님을 믿는 그의 정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구세주 예수는 우리의 의로우신 주님이시므로 믿음의 대상입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실재하는 사람이지 명목상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언적인 방식-declare 으로 그러한 것의 정당화자이며, 하나님은 아들과 영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지만 오직 하나님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의의의 발로 그가 선언하는 정당화의 문장입니다. 율법도 정의도 흠을 잡을 수 없지만, 전적으로 찬성합니다. 그래서 그는 죄인과 비열한 자를 정당화하더라도 정의롭고 정의로운 사람으로 보입니다. 율법의 몽학선생으로서의 위치와 율법의 한 점 한 획도 없어질 수 없다.

희랍어 및 원어 해석:Nestle Greek New Testament 1904
ἐν τῇ ἀνοχῇ τοῦ Θεοῦ, πρὸς τὴν ἔνδειξιν τῆς δικαιοσύνης αὐτοῦ ἐν τῷ νῦν καιρῷ, εἰς τὸ εἶναι αὐτὸν δίκαιον καὶ δικαιοῦντα τὸν ἐκ πίστεως Ἰησοῦ.

로마서 3장 26절에서 사도바울은 방금 전 구절에서 쓴 것을 반복하고 확장해석한다. 하나님께서는 왜 예수님을 그분의 피로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한 제물로 넘겨주셨는가?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가 우리의 죄와 그것으로 얻은 죽음에서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는가? 바울은 이제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가 왔을 때 자신의 의를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 하셨다고 대답합니다. 신은 그가 정의롭다는 것을 보여주셨다. 우리의 죄를 위해 그의 아들을 희생한 것은 그가 인간의 죄악을 처벌받지 않고 우리에게 영생을 바치는 것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사랑과 더불어 그의 정의, 그의 의를 보여주셨습니다. 그보다도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의 '정의인'이 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오직 십자가에서 예수의 희생만이 이 두 가지 목표를 달성했습니다: 하나님의 정의와 하나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 하나님의 가족 안에서 우리의 자리를 위해 그리스도를 믿을 때, 우리의 죄는 용서됩니다. 신은 더 이상 사형 집행자가 아니다. 그는 "정의자"가 된다. 그는 그의 평결을 "유죄"에서 "보상"으로 바꾼다. 그리고 그는 완전한 거룩함과 완전한 의로 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죄들은 실제로 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 이상 오늘의 본문의 주제 - 문제제기에 대한 말씀은 여기서 일단 마치고 다음으로 본문 강해와 본문 설교는 다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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