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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주님의 은혜선포 -희년

by 이덕휴-dhleepaul 2022. 10. 9.

(사61:1-3) 

  1.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2.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눅4:18-19)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 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롭게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 들어가는 말씀 

예수님이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신 후에 갈릴리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침으로써 본격적으로 공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고향 나사렛에 이르자 안식일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서”(16절) 이사야서의 상기 말씀을 펼쳐서 읽고 “이 글이 오늘 너희 귀에 응하였다”(21절)고 말했습니다. 메시아에 대한 예언이므로 고향 사람들 앞에서 당신께서 바로 그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구약의 이사야서와 신약의 누가복음에서의 주님의 은혜에 대한 내용이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메시아 그리스도 예수가 오시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미 주님의 도래와 구약에서의 선지자의 말씀이 하나되어 우리가 미처 깨닫지 못하던 십자가 복음에 대한 깊은 은혜가 숨겨져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상한 마음과 죄에 사슬에 매어있는 우리들의 처지를 알고 계셨을 뿐아니라 이미 구원의 해를 마련하셨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

1. 주님이 오신 목적; 가난한 자에게 복음

기독교 신앙의 중심은   예수님의 복음 십자가의 희생” 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성자 예수님과 십자가 만을 알기로 그리고 전하기로 작정을 했다고 고백을 했습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 그리고 십자가의 흔적을 자기 몸에 지닌다고 고백하기도 했습니다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 6:17). 기독교는 예수님 십자가를 바라보고 붙잡고 믿음으로 죄 사함과 구원과 영생의 축복을 받는 십자가의 종교입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의미와 메시지는 사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 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좋아하지 않고 싫어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을 귀중하게 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귀중하게 여기시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눈을 들어 제자들을 보시고 가라사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6:20).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8:3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5:11,12)

오늘의 본문에서도 이사야가 선지자로 기름부음을 받은 것도 바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유익을 강조하고 또 강조했습니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61:1-3).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 119:71). 솔로몬은 전도서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7:3).

2. 가난과 고난 그리고 슬픔과 아픔이 주는 유익은 주님의 고난을 함께하는 것이다.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은 유익한 것이고 귀중한 것이고 보배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주이신 주 예수님의 삶이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으로 가득한 삶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실 곳이 없어서 말 구유에 태어나셨고 태어나시자 마자 애굽으로 피난을 가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삶을 사셨습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8:20). 이사야 53장은 성자 예수님께서 당하실 가난과 고난과 슬픔을 이렇게 기술했습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53:4).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53:5). 성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려 죽으심으로 극심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십자가의 주님을 따라서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을 몸에 지니고 살았던 주님의 충성된 제자들의 삶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초대교회와 기독교 역사에 나타난 귀중한 신앙의 선배님들은 거의 모두 가난과 고난과 슬픔과 아픔의 길로 걸어가셨고 순교의 길로 걸아가셨다고 생각합니다.

3. 가난이 주는 것은 주님의 보배로운 은혜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9-10). 

여기 약함은 불치의 병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처음에는 그 말씀의 뜻을 제대로 이해 하지도 못했고 받아드리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사도 바울은 주님의 말씀의 깊은 뜻을 깨달았습니다. 사도 바울이 너무 자고 해지고 너무 교만해져서 사탄의 노리개 깜이 되지 않게 하시기 위한 주님의 특별한 배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여러 계시를 받은 것이 지극히 크므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시려고 내 육체에 가시 곧 사단의 사자를 주셨으니 이는 나를 쳐서 너무 자고 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12:7).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고후 12:10). 사실 이적과 능력을 행하며 대단한 성공을 쟁취하다가 실패하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결론- 바울의 세번째기도와 주님의 기도

고린도 후서 12장에는 사도 바울이 자기 경험에 대한 말씀을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자기가 받은 바 신령한 체험과 환상과 계시에 대한 말씀이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자기의 육체의 가시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것을 간질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없이 하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습니다.

또 이 기도는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드린 기도와 비슷한 점이 많습니다.  기도의 회수도 세 차례였고 기도의 내용도 비슷합니다. 예수님께서는 할 수만 있으면 이 잔을 나에게서 떠나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기도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육체의 가시를 없이하여 주소서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대한 응답도 같습니다. 예수님께 대해서 잔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고난의 잔을 마실 수박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큰 능력을 주셔서 능히 그 고난을 견딜 수 있게 만드신 것입니다.

고후 12:9-10에서 사도바울은,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10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신 까닭과 복음을 선포하신 것은, 바로 가난한 자들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그 주님이 다시 오실 것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만나성도들도 가난한 자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갖고 마음이 상한 자를 위로하고 우리가 포로 된 자와 갇힌 자에게 구원의 길을 열어주는 몫을 해야 할 줄 압니다.

할렐루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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