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0.2 주일 낮 예배
들어가는 말씀;
신약성서에서 주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일4:10-11에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몰랐을 때는 모르지만 알았다면 보답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는 것이 최소한의 양심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주기도문에도 "우리가 우리 죄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그랬습니다.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면 예수님께서 주기도를 가르치신 후에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마 6:14-15) 이 말씀만 따로 강조하셨습니다.
이미 우리는 주님을 믿게 됨으로서 용서받은 몸입니다. 용서받지 못할 사람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물론 성령님을 훼파한 죄는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죄인입니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자는 죽어서도 지옥에 갑니다. 믿지 않는 것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나는 나를 믿는 놈이다. 하고 입벌리는 자는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그들보다 훨씬 더 큰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용서하시고 구원하셨고 하나님의 자녀요 일군이요, 왕 같은 제사장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요, 천국의 영생을 주셨습니다. 주님이 오시면 예수님과 같은 영광의 형체로 변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사랑을 베풀어야 합니다.
1. 원수를 사랑하라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마5:44-45) 말씀하셨습니다. 육신으로 생각하면 사마리아인이 그를 사랑할 이유가 없습니다. 강도 만난 자가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간 것을 보면 유대인이 확실한데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을 천대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마리아인은 그를 사랑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도 그와 같습니다. 요일3:1에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자기 아들을 주시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사랑하며 사는 것은 마땅한 일입니다.
2.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것은 당연하다
엡2:8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였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그 구원과 영생을 얻는 길은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가장 큰 계명이기 때문입니다.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믿음과 사랑 두 가지입니다. 요일3:23에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가 우리에게 주신 계명대로 서로 사랑할 것이라” 사랑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지만 그 생명 안에서 풍성하게 자라게 해줍니다.
이어서 요일3:14에도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했고, 엡4:15에도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하였습니다. 요14:21에도 “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하셨습니다.
3. 넘치도록 베풀어라
누가 복음에도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눅6;38) 하셨고, 바울도 고후9:8에서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했습니다. 돕는 손길에서 복이 옵니다. 테레사 수녀님처럼 내 손에 든 것을 나누지 못하면 영원히 나누지 못합니다.
결론 - 작은 것부터 사랑하라
주님처럼 하라 인도의 성자 간디의 말입니다. 기독교를 믿어라는 말에 대한 답이었습니다. 무슨 뜻인지 알지요? 오늘날의 기독교는 사람이 주님의 말씀 안에서 세운 것이지만, 거기에는 인본주의적 내용이 있습니다.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그 사람이 가르키는 손가락을 바라보는 것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믿음과 사랑 그리고 주님의 말씀안에서 승리하는 우리 만나인이 되어야 합니다.
마25:45-46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리니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것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자본주의의 기본원칙과 주님이 주신 사랑의 원칙은 서로 양립할 수 없다고 에릭 프롬은 그의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 말미에 말했습니다. 안되는 것과 원칙이 아닌 것을 실천하는 것은 오직 주 안에서 믿음의 원칙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오늘도 우리 만나인은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한발자욱씩 나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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