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3.05.07
말씀: 요한복음 15:12
제목: 더 큰 사랑은 없다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본문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하리라 11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내 기쁨이 너희 안에 있어 너희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14 너희가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의 하는 것을 깨닫지 못함이니라 그러나 나는 내 아버지께 배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주었기 때문에 너희를 친구라고 불렀다. 16 너희가 나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선택했다. 내가 너희에게 가서 열매를 맺게 하였노니 이는 남지 아니할 열매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무엇을 구하든지 다 받게 하려 함이라 17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명령이다. 서로 사랑하라.
- 들어가는 말씀
기독교인의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오늘 말씀의 제목은 더 큰 사랑은 없다인데, 뭐가 더 없다는 것일까요? 어버이가 자식한테 주는 사랑입니까??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주는 사랑이기 때문에 그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보다 더 큰 사랑은 인간세상에는 아마 없을 것입니다.ㅣ 이것이 기독교의 절대진리이기 때문입니다.ㅣ -dhleepaul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서 친히 이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것은 주님이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마지막 설교였습니다. 그것은 매우 긴 설교입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자신이 곧 죽게 되리라는 것을 아시는 분처럼 친구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권고하고 가르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제 그분이 명하신 다른 것들 중 하나는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명하노니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말합니다.(롬 13:8-10)
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이 말씀은 매우 역설적인 방법으로 ‘피차 사랑할 것’ 을 강조하고 있다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은 아무리해도 끝이 없으므로 더욱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처럼 사람이 아무리 열심히 해도 다할 수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그렇다고 그만둘 수도 없는 것이 사랑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예수님께서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종의 모습으로 오셔서 우리를 섬기며 사랑하셨기에, 예수님을 믿는 우리도 서로에게 사랑으로 종노릇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 5:13에서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고 말씀했습니다.
1. 함께 사랑하라
우리의 모든 의무는 "함께 사랑하라"는 이 말 속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남을 사랑하는 자는 온 율법을 다 이루느니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이 사랑이라는 단어 안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사랑은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시간마다 하는 기도가 주님의 기도입니다. 주기도문에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라는 기도를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철면피 인간이었습니다. “(마5:7)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신 말씀대로 긍휼히 여김을 받을 수 없는 몰지각한 인간이었습니다.
“(약 2:13)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는 말씀대로 긍휼없는 심판을 받아 마땅히 파렴치한 인간이었습니다. 그 종이 동료에 이러한 악행을 보고 다른 동료들이 이 사실을 왕에게 알렸습니다. 이에 왕은 즉각 그 1만 달란트 탕감받았던 종을 재소환해서 “(마18:32-34)
2. 하나의 사랑
이웃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 사랑할 수 없고 하나님을 사랑한다면서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그것은 거짓말하는 것입니다.(요일 4:20-21)
그러므로 사랑은 하나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마22:37-40)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고 하셨습니다. 다시 말해 이 두 계명(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모든 율법과 예언자들의 본 뜻이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그 모든 율법이 ‘사랑’에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곧 율법의 완성이라는 것입니다.
요시야가 마음과 성품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했다고 한 것은 요시야가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첫째 계명 곧 마음과 뜻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지켰다는 뜻입니다. 요시야가 첫째 계명을 준행하고, 하나님의 모든 율법을 온전히 준행했다는 극찬을 받게 된 이유는 유월절을 지켜서였습니다.
유월절(逾越節) 또는 과월절(過越節)은 유대인들이 이집트 신왕국의 노예 생활에서 탈출한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요시야 왕이 유월절을 지키다 “왕이 뭇 백성에게 명하여 가로되 이 언약책에 기록된 대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유월절을 지키라 하매 사사가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시대부터 이스라엘 열왕의 시대에든지 유다 열왕의 시대에든지 이렇게 유월절을 지킨 일이 없었더니 요시야왕 십팔 년에 예루살렘에서 여호와 앞에 이 유월절을 지켰더라”왕하 23장 21~23절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율법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사랑이며, 구약과 신약의 율법을 세우셔서 우리로 하여금 지키게 하신 최종 목적 역시 사랑에 있음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첫째 계명은 막연히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생각만 해서는 지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깊은 진리를 알지 못하면 입술로는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노라 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다른 신을 섬기게 됩니다. 실지로 많은 사람들이 그와 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첫째 계명을 완수하게 하는 진리는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새 언약의 유월절’입니다. 할렐루야~~~
3. 사랑의 힘
이제 사도 바울은 이 사랑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보여줍니다. 이 자비로운 사랑은 너무나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것이 없어도 그것으로 충분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사람이 다른 모든 것을 가지고 있어도 그 사랑이 부족하다면 그것은 그를 돕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모두 헛되고 잃어버린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것을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그러나 내게 산을 옮길 만한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또 내 모든 소유로 가난한 자들을 먹이고 내 몸을 주어 불사르게 하였느니라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장). 이것들은 경건한 선물입니다. 바울은 사람이 사랑 없이 그것들을 가졌을 때 그것들을 아무것도 부르지 않습니다. 이 사랑이 없을 때 다른 모든 미덕은 헛된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큰 필요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성 바울이 믿음의 위엄에 반하는 말을 했다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성 바울이 여기서 우리가 영생을 얻는 의롭게 하는 믿음에 대해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 믿음이라는 말을 기적을 행하고 산을 옮기는 은사로 이해한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는 그러한 믿음에 대해 말합니다. 믿음은 오직 의롭게 합니다. 이 말씀은 가장 참되고 확실하다. 그리고 사도 바울은 여기서 이 생생한 의롭게 하는 믿음에 대해 말하지 않습니다. 이 올바른 믿음은 사랑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믿음에서 나오고 흘러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그가 믿지 않고는 아무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바로 하나님의 존재론적 목표이자 하나님 나라의 성취를 위한 동력입니다. 기독교 사상과 믿음의 요체이요 실천목표입니다. 할렐루야~~~~~
사도 바울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표현을 가지고 있는데, 외적 서신에 따르면 이 표현은 이 믿음을 경멸하고 사랑을 찬양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성 바울이 여기에서 마치 영원을 의미하는 것처럼 말하는 위대함을 설명하는 학식이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면 더 이상 믿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어떠하심을 우리의 눈으로 대면하여 봅니다. 그러나 그 사랑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이는 사랑이 으뜸이라 일컫게 하려 함이니 그 사랑은 영원함이로다. 그리고 그녀가 가장 으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그녀에게 오직 신앙에만 관련된 직분을 부여해서는 안 됩니다.
결론 -그리스도의 옷을 입어라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옷을 입은 사람이 누구인지 알려면 성 바울에게서 그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는 유일한 옷인 사랑을 "사랑은 오래 참고 오래 참습니다. "라고 가장 분명하게 묘사했습니다. 이제 분을 품고 노하는 사람은 이 옷에서 벗어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 그리스도의 옷을 버리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병에 걸리거나 역경에 처했을 때 우리의 의무는 인내하고, 기꺼이 고통을 겪고, 도움과 도움과 위로를 위해 그분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분 없이는 어떤 환난도 견딜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간구해야 합니다. 그분은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그분의 약속에 거짓되거나 진실하지 않다고 생각하지 않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일을 삼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내해야 합니다.
"사랑은 온유하고 다정하며 사랑이 있어 시기하지 아니하며." 이웃이 잘 될 때 그의 이익을 시기하는 자, 그런 자들은 그들의 옷차림에서 벗어났고, 따라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벗어났습니다. 시기하는 것은 마귀의 종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거만하지 아니하며 도발하지 아니하며";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을 화나게 하여 그들과 사랑에 빠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애정과 씨름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의 이 옷을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악마는 울부짖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우세한 우리를 노리고", 우리를 우리의 의복에서 끌어내어 우리에게서 사랑과 자비의 매듭을 빼앗아 가기 때문입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이 복음서에서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명하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복수형으로 말씀하시며,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한 가지로 그것을 덧붙이십니다. 마치 사도 바울이 로마서 13장에서 "아무에게도 아무 빚도 지지 말고 서로 사랑하십시오. -아멘
오늘도 우리 만나인에게 주신 하나님의 기쁜 소식은 여전히 살전 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말씀을 마칩니다.
* 오늘의 말씀 설교 참조:
'설교(학)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주님을 증언함의 고난 (1) | 2023.05.21 |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The true will set you free) (0) | 2023.05.14 |
루터의 설교 -보석금에 대해 (0) | 2023.05.04 |
남은 자의 고난 (1) | 2023.04.30 |
서로 사랑하라 (0) | 2023.04.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