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s-space.snu.ac.kr/bitstream/10371/79444/1/40-8.pdf
"현실주의와 이상주의" - 철학의 큰 두 줄기
밀림을 헤매다가 지도를 보고도 길을 찾을 수 없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지도를 탓하는 경우다. 이들은 10년이면 강산도 바뀐다는 데 몇 년 전에 산 지도가 맞을 리 없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곤 새로운 지도를 구하거나 앞 서 간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가던 길을 간다. 반면, 두 번째 부류는 지도 보다는 오히려 지형을 탓한다. 옛날엔 분명 이랬는데 '강산이' 또 바뀌었다고 하면서 말이다. 그러곤 꼼꼼하게 지도에 자신들이 가는 길을 기록하며 나간다. 언젠가는 지도에 적힌 대로 제대로 된 길을 꼭 내고야 말겠다고 결심하면서.
철학자들도 이렇게 둘로 나누어 볼 수 있을 듯하다. 상황이 바뀌면 자신의 철학적 입장도 그에 걸맞게 바꾸는 사람들이 있
는 반면, 자기 입장에 따라 현실을 바꾸어 꿰맞추려는 사람들도 있다. 보통 우리는 앞의 사람을 '현실주의자'라 하고, 뒤의 사람을 '이상주의자'라고 부른다. 즉, 이상주의자가 미리 그려진 '지도'에 맞추어 현실을 바꾸는 사람들이라면 현실주의자는 현실에 맞추어 '지도'를 고쳐나가는 사람들이다. 물론 여기서 지도란 세상을 보는 틀, 즉 '철학'을 말한다. 이 달에 살펴 볼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B.C. 540?~480?)와 파르메니데스(Parmenides:B.C. 515?~445?)는 세상을 보는 두 개의 큰 지도, 즉 현실주의와 이상주의라는 원형(原形)을 형성한 사람들이다.
"어두운 철학자" - 헤라클레이토스
그 시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헤라클레이토스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료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당시 역사가들이 '인생의 전성기'에만 주목했을 뿐, 태어나고 죽는 등의 '하찮은 개인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다.
아무튼 그는 밀레토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최대의 무역 도시였던 에페소스에서 태어났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끊임없이 물자와 인구가 이동하는 에페소스의 환경은 결국 "만물은 흐른다(Panta rei)"라는 유명한 그의 철학적 결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귀족적인 성향의 괴팍한 사람이었던 듯싶다. 실제로 그는 최고 제사장 자리를 대대로 물려받을 정도의 에페소스 최고 명문가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귀족 출신 엘리트 젊은이들이 그랬듯, 그 또한 '무지한' 민중에 대한 혐오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은 많고 선한 사람은 적다. 대개는 짐승처럼 자기 배만 채우려 들기 때문이다."
"...민중들은...서투른 시인을 믿고 천민들을 스승으로 삼는다..."
심지어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확신할 정도여서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가도, "잠깐!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다시 이야기 합시다."라고 스스로에게만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었으니 당시에 에페소스의 민주적인 정치제도도 곱게 보았을 리 없다. 맏이였던 그는 당연히 물려받아야 할 최고 제사장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아르키메스 신전에서 아이들과 주사위 놀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그로서는 아이들 놀이가 정치보다 더 제대로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정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은 모두 목매달아 죽고 수염도 안 난 애송이들에게 맡겨야 한다.'며 경계수위를 한 참 넘는 독설과 야유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헤라클레이토스는 후에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가 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첫 째, 귀족이었던 그에게는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색할 여유(leisure:skolē)가 있었다. 두 번째로, 세상일에서 한 발 바깥에 물러서 있었으므로 당장의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일의 근본을 깊이 있게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는 줄곧 어두운 얼굴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어두운 사람'이라고 불리곤 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는 없다."
그러면 어두운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파악한 세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만물은 흐른다."라는 것이다. 그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한다. 강물도 흘러가지만 나도 또한 변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그는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는 말도 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대립하고 투쟁하는 가운데 의미를 갖는다. 피곤이 휴식을 즐겁게 하고 배고픔이 없으면 배부름도 없듯, 모든 것은 대립되는 다른 쪽과의 '투쟁'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세상은 타오르는 '불'과 같다. 움직이지 않는 불이란 생각할 수도 없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불타오르기도 하고 꺼져가기도 하는 영원히 살아있는 불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렇게나 서로 싸우며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막 싸우는 것 같은 이종격투기에도 따라야할 규칙은 있다. 마찬가지로 언뜻 보기에 무질서하게 대립하고 투쟁하면서 흘러가는 세상일도 결국 우주의 섭리, 즉 로고스(Logos)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우주는 10,800년을 주기(週期)로 불에서 나와 다시 불로 돌아가는 커다란 순환 과정을 밝고 있다.
세상이 이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아 할까?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이성을 통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같은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이치, 즉 로고스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이다. 로고스의 관점에서, 즉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언제나 선하고 정의롭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의를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부정의를 정의로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전해오는 것은 몇몇 단편 들, 즉 조각난 문장들 밖에 없다. 게다가 귀족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천한 것들', 즉 독자들의 이해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당시에 이미 '신탁(神託)' 수준의 애매한 표현으로 악명 높았는데, 심지어 소크라테스조차도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솜씨 좋은 델로스 잠수부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대단히 깊이 있는 진리를 담은 글이라는 뜻이다.
2,500년 전에도 난해했던 사람의 생각을 몇 개 조각글 밖에 안 남은 지금에 와서 제대로 알리는 없다. 하지만 남아있는 조각글과 후대의 해석을 모아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그의 주장은 앞서 본 내용 정도가 될 듯싶다. 그리고 이처럼 변화하는 현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정의로움과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세, 이 것이 헤라클레이토스가 강조하려는 바였다면 우리는 그를 최초의 현실주의자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존재하는 것은 일자(一者) 뿐이다." - 파르메니데스
이 번에는 파르메니데스를 살펴볼 차례다.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Elea: 지금의 이탈리아 벨리아) 사람이다. 엘레아는 에페소스와는 정반대의 도시였다. 지금도 한적한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인구 천 명이 안 되는 소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스피노자가 다락방에 은둔하면서 고도의 정교하고 세련된 사유를 할 수 있었듯, 파르메니데스는 이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독특한 철학 이론을 내 놓았다.
이 변방의 사색가는 이미 당대의 최고 문화 국가 아테네에까지 널리 알려질 만큼 유명한 학자였는데(25세의 소크라테스가 이 노 철학자와 치열하게 논쟁한 기록이 전해온다.), 아쉽게도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
그러면 그가 주장했던 바는 무엇일까? 일단 쉼 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매우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말장난 같아 보이는 파르메니데스의 논변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말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당연하다. 뭐 이런 말을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말은 충격적이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사실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없다."의 형태로 어림짐작 할 뿐, '없음 자체'를 머리에 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없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있는 것 하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으려면 있는 것 사이에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하나의 있는 것, 즉 '일자(一者) 존재' 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운동과 변화도 있을 수 없다.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법, 하지만 앞서 논변이 증명하듯 허공은 없다. 그렇다면 운동도 없다.
머리가 복잡해서 한 숨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 '말장난'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논증은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낳았으며 이후 2,500여 년 동안 수많은 논쟁을 낳았을 정도다.
파르메니데스가 이 논증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세상의 참모습은 눈앞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냉철한 논리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은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또한 『자연에 관하여』라는 똑같은 제목의 시 중 일부만이 전해올 뿐이다. 그는 이 시에서 진리의 길(존재의 길)과 믿음의 길(비존재의 길)을 매우 엄숙한 어조로 구분하고 강조한다.
"...젊은 파르메니데스가 태양의 신에 인도되어 마차를 타고 밤, 암흑의 집에서 벗어나 큰 길을 가다가 진리의 길과 허위의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에 도달하나, 정의의 여신에 인도를 받아서 전자(前者), 즉 진리의 길을 택한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항상 변화하는 세계를 진짜라고 받아드린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따르면 이는 단순한 '믿음(doxa)'일 뿐이다. 즉 허위라는 거다. 진리의 길을 따르면, 즉 냉철의 이성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커다란 존재 하나 일 뿐이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거짓이라고 규정하며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이성과 논리를 통해 파악된 세계가 진짜라고 굳게 믿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세상을 자기의 생각에 맞추려는 사람, 즉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이상론자라고 말이다. 실제로 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감각과 실제 세계를 경멸하고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철학의 전통은 파르메니데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계"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 역사에 있어 줄곧 '라이벌 관계'였다. 하나는 세상을 끊임없는 변화로 보았고 다른 하나는 고정불변하다고 보았으니 도저히 타협할 지점이 없는 셈이다. 아울러 이 둘의 주장은 '생각의 씨앗'이어서, 이 둘을 기초로 철학의 역사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쳐 나갔다. 헤라클레이토스 계통은 변화와 감각을 중시하는 쪽으로, 파르메니데스 계통은 영원불변한 진리와 이성을 절대시하는 쪽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 둘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에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깊이 생각하여 눈에 보이는 것 내면에 있는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려 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 둘은 '철학자'이다. 드러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순간의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객관적이고 차분한 마음으로 세상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고 하는 것. 철학자는 이런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사람이다. 논쟁에 늘 따라붙기 마련인 감정적인 흥분을 못 이겨서 자신이 옳지 못함을 알고 있음에도 상대주장을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철학자의 냉철한 자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진리는 결국 모두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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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이 글은 "고교독서평설(지학사)" 2003년 10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어두운 철학자" - 헤라클레이토스
그 시대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듯, 헤라클레이토스가 언제 태어났고 언제 죽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자료가 없어지기도 했지만, 당시 역사가들이 '인생의 전성기'에만 주목했을 뿐, 태어나고 죽는 등의 '하찮은 개인사'에는 별 관심이 없었던 탓도 있다.
아무튼 그는 밀레토스와 더불어 고대 그리스 최대의 무역 도시였던 에페소스에서 태어났다. 사람은 태어난 환경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법, 끊임없이 물자와 인구가 이동하는 에페소스의 환경은 결국 "만물은 흐른다(Panta rei)"라는 유명한 그의 철학적 결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귀족적인 성향의 괴팍한 사람이었던 듯싶다. 실제로 그는 최고 제사장 자리를 대대로 물려받을 정도의 에페소스 최고 명문가 출신이다. 그래서인지 귀족 출신 엘리트 젊은이들이 그랬듯, 그 또한 '무지한' 민중에 대한 혐오를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
"...세상에는 악한 사람은 많고 선한 사람은 적다. 대개는 짐승처럼 자기 배만 채우려 들기 때문이다."
"...민중들은...서투른 시인을 믿고 천민들을 스승으로 삼는다..."
심지어 자신보다 현명한 사람은 없다고 확신할 정도여서 사람들과 토론을 하다가도, "잠깐! 내 자신에게 물어보고 다시 이야기 합시다."라고 스스로에게만 '자문'을 구할 정도였다고 한다.
이런 사람이었으니 당시에 에페소스의 민주적인 정치제도도 곱게 보았을 리 없다. 맏이였던 그는 당연히 물려받아야 할 최고 제사장 자리를 동생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아르키메스 신전에서 아이들과 주사위 놀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였다고 한다. 그 이유가 걸작이다. 그로서는 아이들 놀이가 정치보다 더 제대로 잘 돌아가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란다. 심지어 '정치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시민들은 모두 목매달아 죽고 수염도 안 난 애송이들에게 맡겨야 한다.'며 경계수위를 한 참 넘는 독설과 야유도 서슴지 않는다.
그럼에도 헤라클레이토스는 후에 플라톤이 말한 철학자가 될 만한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었다. 첫 째, 귀족이었던 그에게는 생계 걱정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색할 여유(leisure:skolē)가 있었다. 두 번째로, 세상일에서 한 발 바깥에 물러서 있었으므로 당장의 이해관계를 떠나 모든 일의 근본을 깊이 있게 바라 볼 수 있었다. 그는 줄곧 어두운 얼굴로 깊은 사색에 잠겨 있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는 당시 사람들에게 '어두운 사람'이라고 불리곤 했다.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는 없다."
그러면 어두운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파악한 세계의 본질은 무엇일까? "만물은 흐른다."라는 것이다. 그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 담글 수는 없다."는 유명한 말을 한다. 강물도 흘러가지만 나도 또한 변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세상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고 움직이고 있다.
게다가 그는 "투쟁은 만물의 아버지"라는 말도 했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것은 대립하고 투쟁하는 가운데 의미를 갖는다. 피곤이 휴식을 즐겁게 하고 배고픔이 없으면 배부름도 없듯, 모든 것은 대립되는 다른 쪽과의 '투쟁' 속에서만 의미가 있다. 이렇게 보았을 때 세상은 타오르는 '불'과 같다. 움직이지 않는 불이란 생각할 수도 없듯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며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세계는 불타오르기도 하고 꺼져가기도 하는 영원히 살아있는 불이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말이다.
하지만 세상이 아무렇게나 서로 싸우며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아무렇게나 막 싸우는 것 같은 이종격투기에도 따라야할 규칙은 있다. 마찬가지로 언뜻 보기에 무질서하게 대립하고 투쟁하면서 흘러가는 세상일도 결국 우주의 섭리, 즉 로고스(Logos)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나아가 우주는 10,800년을 주기(週期)로 불에서 나와 다시 불로 돌아가는 커다란 순환 과정을 밝고 있다.
세상이 이렇다면 우리 인간은 어떻게 해아 할까? 그에 따르면 우리는 이성을 통해 '아무렇게나 쌓여있는 쓰레기 더미'같은 세상 속에 숨겨져 있는 이치, 즉 로고스를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 세상의 조화로움과 아름다움을 알게 될 것이다. 로고스의 관점에서, 즉 신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세상은 언제나 선하고 정의롭다.' 하지만 사람들은 '정의를 부정의하다고 생각하는 가하면 어떤 사람들은 부정의를 정의로 생각한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자연에 관하여』라는 책을 썼다고 한다. 하지만 전해오는 것은 몇몇 단편 들, 즉 조각난 문장들 밖에 없다. 게다가 귀족인 헤라클레이토스는 '천한 것들', 즉 독자들의 이해는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당시에 이미 '신탁(神託)' 수준의 애매한 표현으로 악명 높았는데, 심지어 소크라테스조차도 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솜씨 좋은 델로스 잠수부가 필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대단히 깊이 있는 진리를 담은 글이라는 뜻이다.
2,500년 전에도 난해했던 사람의 생각을 몇 개 조각글 밖에 안 남은 지금에 와서 제대로 알리는 없다. 하지만 남아있는 조각글과 후대의 해석을 모아 추측해 보건대 아마도 그의 주장은 앞서 본 내용 정도가 될 듯싶다. 그리고 이처럼 변화하는 현실을 주의 깊게 바라보며 정의로움과 바람직한 삶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생각하는 자세, 이 것이 헤라클레이토스가 강조하려는 바였다면 우리는 그를 최초의 현실주의자라 불러도 좋을 듯싶다.
"존재하는 것은 일자(一者) 뿐이다." - 파르메니데스
이 번에는 파르메니데스를 살펴볼 차례다. 파르메니데스는 엘레아(Elea: 지금의 이탈리아 벨리아) 사람이다. 엘레아는 에페소스와는 정반대의 도시였다. 지금도 한적한 시골 마을에 지나지 않지만 당시에도 인구 천 명이 안 되는 소도시였다고 한다. 하지만 후대의 스피노자가 다락방에 은둔하면서 고도의 정교하고 세련된 사유를 할 수 있었듯, 파르메니데스는 이 한적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매우 논리적이면서도 독특한 철학 이론을 내 놓았다.
이 변방의 사색가는 이미 당대의 최고 문화 국가 아테네에까지 널리 알려질 만큼 유명한 학자였는데(25세의 소크라테스가 이 노 철학자와 치열하게 논쟁한 기록이 전해온다.), 아쉽게도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져 있는 바가 없다.
그러면 그가 주장했던 바는 무엇일까? 일단 쉼 호흡을 하고 정신을 집중하기 바란다. 여러분은 지금부터 상식을 완전히 뒤집는 매우 놀라운 발견을 하게 될 것이다. 말장난 같아 보이는 파르메니데스의 논변을 완전히 이해했다면 말이다.
파르메니데스에 따르면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당연하다. 뭐 이런 말을 하나 싶을 것이다. 하지만 다음 말은 충격적이다. "없는 것은 생각할 수조차 없다." 사실 우리는 없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이 없다."의 형태로 어림짐작 할 뿐, '없음 자체'를 머리에 그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있는 것'뿐이다.
그런데 없는 것이 없다면 세상에는 있는 것 하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있는 것이 여러 개 있으려면 있는 것 사이에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하는 데 없는 것은 말 그대로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세상에는 하나의 있는 것, 즉 '일자(一者) 존재' 만이 있을 뿐이다.
게다가 운동과 변화도 있을 수 없다. 허공(없는 것)이 있어야 움직일 수 있는 법, 하지만 앞서 논변이 증명하듯 허공은 없다. 그렇다면 운동도 없다.
머리가 복잡해서 한 숨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이 '말장난'을 반박하기가 쉽지 않다. 그의 논증은 '존재론'이라는 철학의 가장 중요한 분야를 낳았으며 이후 2,500여 년 동안 수많은 논쟁을 낳았을 정도다.
파르메니데스가 이 논증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것은 세상의 참모습은 눈앞에 보이는 대로가 아니라는 점이다. 냉철한 논리의 눈으로 볼 때 세상은 하나의 존재일 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와 마찬가지로 그의 작품 또한 『자연에 관하여』라는 똑같은 제목의 시 중 일부만이 전해올 뿐이다. 그는 이 시에서 진리의 길(존재의 길)과 믿음의 길(비존재의 길)을 매우 엄숙한 어조로 구분하고 강조한다.
"...젊은 파르메니데스가 태양의 신에 인도되어 마차를 타고 밤, 암흑의 집에서 벗어나 큰 길을 가다가 진리의 길과 허위의 길이 나누어지는 지점에 도달하나, 정의의 여신에 인도를 받아서 전자(前者), 즉 진리의 길을 택한다..."
우리는 감각을 통해 항상 변화하는 세계를 진짜라고 받아드린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의 따르면 이는 단순한 '믿음(doxa)'일 뿐이다. 즉 허위라는 거다. 진리의 길을 따르면, 즉 냉철의 이성으로 바라보면 세계는 커다란 존재 하나 일 뿐이다. 그는 눈앞에 보이는 세계를 거짓이라고 규정하며 눈을 감아버린다. 그리고 이성과 논리를 통해 파악된 세계가 진짜라고 굳게 믿는다. 이런 점에서 그는 세상을 자기의 생각에 맞추려는 사람, 즉 이상주의자라고 생각해도 좋겠다. 그것도 아주 극단적인 이상론자라고 말이다. 실제로 철학의 역사를 살펴보면 감각과 실제 세계를 경멸하고 이성적 사고를 중시하는 철학의 전통은 파르메니데스에서 그 뿌리를 찾을 수 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세계"
파르메니데스와 헤라클레이토스는 철학 역사에 있어 줄곧 '라이벌 관계'였다. 하나는 세상을 끊임없는 변화로 보았고 다른 하나는 고정불변하다고 보았으니 도저히 타협할 지점이 없는 셈이다. 아울러 이 둘의 주장은 '생각의 씨앗'이어서, 이 둘을 기초로 철학의 역사는 각각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쳐 나갔다. 헤라클레이토스 계통은 변화와 감각을 중시하는 쪽으로, 파르메니데스 계통은 영원불변한 진리와 이성을 절대시하는 쪽으로. 어떤 의미에서 이 둘의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이 둘에도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깊이 생각하여 눈에 보이는 것 내면에 있는 세상의 본질을 꿰뚫어보려 했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이 둘은 '철학자'이다. 드러난 것에 집착하지 않고 순간의 이해관계에도 얽매이지 않으며, 객관적이고 차분한 마음으로 세상의 본질을 정확히 알려고 하는 것. 철학자는 이런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려는 사람이다. 논쟁에 늘 따라붙기 마련인 감정적인 흥분을 못 이겨서 자신이 옳지 못함을 알고 있음에도 상대주장을 인정하지 못하고 고집부리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철학자의 냉철한 자세를 떠올리며 마음을 다잡아야 할 것이다. 진리는 결국 모두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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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복(중동고 철학교사, 서강대 철학과 박사과정)이 작성한 이 글은 "고교독서평설(지학사)" 2003년 10월호에 실렸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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