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orie der wirtschaftlichen Entwicklung
조지프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
글 최승노(자유경제원 사무총장)
Joseph A. Schumpeter 1883~1950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이론경제학자. 빈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처음에는 사회경제사에 흥미를 가졌으나 뵘바베르크를 만난 후 이론경제학으로 전향했다. 체르노비츠대학·그라츠 대학 교수를 지냈고, 제1차 세계대전 후 오스트리아 재무장관과 비더만 은행 총재를 지내기도 하였다. 1932년 미국으로 건너가 하버드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미국에 귀화했다. 1934~1941년 미국계량경제학회를 창설하고 회장을 지냈다. 1948년 외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미국경제학협회 회장이 되었고, 국제경제학회International Economic Association 초대 회장에 선출되기도 했다. 케인스와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평가되고 있다. 『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내용Das Wesen und der Hauptinhalt der theoretischen Nationalökonomie』(1908), 『경제발전의 이론Theorie der wirtschaftlichen Entwicklung』(1912), 『학술 및 방법의 제단계Epochen der Dogmen und Methodengeschichte』(1914), 『경기순환론Business Cycles』(1939),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Capitalism, Socialism and Democracy』(1942) 등을 저술하였다. 케인스와 더불어 20세기 전반의 대표적 경제학자로 평가된다.
어떤 책인가
경제발전은 왜 일어나는 것일까? 경제가 발전하는 이유를 따져보고 그 이론적 체계를 밝힌 책이 조지프 슘페터Joseph A. Schumpeter에 의해 1세기 전에 저술되었다. 바로 『경제발전의 이론』이다. 경제발전 이론서로 고전인 셈이다. 경제발전이 일어나지 않는 상태에서 자본주의 경제는 정태적 일반균형 상태에서 순환적인 현상만을 보인다. 하지만 경제체제 내에서 균형 상태를 깨뜨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혁신적인 에너지가 분출할 때가 있다. 슘페터는 기존의 질서를 파괴하는 그 힘의 원천을 찾고자 했다. 슘페터는 그 핵심에 기업이 있고 기업가가 있음을 밝힌다. 기업가정신을 창조적 파괴의 핵심으로 파악함으로 해서 정태적 상태에 있는 자본주의가 계속 발전할 수 있게 된다. 그는 자본주의가 스스로 진화하고 변화하는 시스템 그 자체임을 인지한 경제학자였다. 자본주의가 정태적 상태에 계속 머물 수 없으며 늘 변화하는 본질적 속성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슘페터는 양적으로 경제규모가 커지는 성장보다는 본질적인 변화를 경제발전이라고 보았다. 즉 이동수단이 마차산업에서 철도산업으로 변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런 경제발전에는 혁신이 필요하다. 슘페터는 혁신을 새로운 생산요소의 결합으로 설명하고 있으며, 다음의 다섯 가지 방식으로 나타난다고 보았다. 첫째는 새로운 재화다. 이전에는 없었던 재화이거나 새로운 품질의 재화를 생산하는 방식이다. 둘째는 새로운 생산방식이다. 새로운 생산방식을 도입함으로 해서 혁신이 일어난다. 셋째는 새로운 시장의 개척이다. 지금까지 접할 수 없었던 시장이 열리면서 변화가 일어난다. 넷째는 새로운 원료와 자재의 출현이다. 새로운 원료 또는 중간재는 비용을 변화시키며 혁신을 가져온다. 다섯째는 새로운 조직의 실현이다. 새로운 형태의 조직이나 관계가 형성되거나 기존의 독점적 지위가 깨어짐으로 해서 변화가 일어난다. 경제적으로 적은 비용을 가지고 더 많은 생산물을 만들어내는 것이 생산활동의 기본이다. 하지만 혁신은 이러한 활동을 근본적으로 바꾸어 놓는다. 단순히 비용의 절감이나 생산물 증가가 아닌 새로운 상태를 가져온다. 이러한 혁신활동의 결과로 기업가는 이윤을 확보한다. 이점은 마르크스 경제학과 본질적으로 차이를 갖는다. 마르크스는 이윤을 착취 개념으로 보았지만, 슘페터는 이윤을 기업가 혁신의 결과로 본 것이다. 즉 기업가는 혁신을 이루고 그 대가로 이윤이라는 보수를 받는 것이다. 기업가는 이러한 혁신적 활동의 주체인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혁신은 기업가로부터 발생한 것이지 시장의 소비자로부터 발생한 것이 아니다. 슘페터의 자본주의 경제관은 낙관적이다. 진취적인 기업가가 계속 나오고 기술 발전의 무한한 가능성이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항상 존재한다고 보았다. 이러한 생각은 불황에 대처하기 위해 특별한 개입이 필요 없으며 시장의 자연치유를 기다려야 한다는 해법의 바탕이 된다. 불황에 정부가 나서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케인스 경제학과 상반된다. 1930년대 공황에 대해서도 슘페터는 경기 순환의 여러 주기가 중복된 점과 은행제도의 실패에 따른 것으로 파악하고 정부의 개입이 공황 극복에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보았다. 사실 자본주의는 공격받기 쉽다. 열린 사회의 특징을 가지고 있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새로운 혁신을 시도할 수 있다. 이 장점이 자본주의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킨 요인이기도 하지만, 그것이 또한 반자본주의 공격을 쉽게 허용하는 통로를 제공하기도 한다. 그만큼 자본주의는 열린 시스템이다. 슘페터는 마르크스 경제학과 분명히 대립되는 측면을 갖고 있다. 당시는 세계적으로 마르크스 경제학의 열풍이 불던 시절이었다. 슘페터의 이론은 마르크스의 논리가 가진 함정과 허점을 드러내고 자본주의가 자연치유성을 가진 건강한 시스템임을 밝히는 데 공헌하였다. 사회주의 공세에 취약한 지형에서 쉽게 비판받는 자본주의가 허물어지지 않도록 방어한 지식인이 바로 슘페터인 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슘페터는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에서 마르크스와 동일하게 자본주의가 사멸할 것으로 보았다. 자본주의는 성장하고 발전하고 언젠가는 사라질 체제라고 본 것이다. 물론 그 내용은 마르크스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그 자체적인 모순에 의해 붕괴될 것으로 보았지만, 슘페터는 마르크스가 지적한 물질적 요인보다는 기업가의 혁신이 가져온 물질적 성공이 만들어 내는 비판정신이라는 정신적 요인 때문에 사라질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그의 시각은 스스로 혁신을 통해 물질적 생산체제를 공고화하는 자본주의를 영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그 사회가 가지고 있는 정신적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경고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즉 자본주의는 그 내부의 힘으로 발전을 거듭하지만, 그 성공의 결과물을 향유하면서 나타나는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 성향을 억제하지 못하면 종말을 고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슘페터는 자본주의 붕괴 요인으로 다음의 네 가지를 꼽았다. 첫째, 혁신이 일상화되다보면 경제영역도 전문행정가가 관리하는 일이 되고, 결국 혁신을 행하는 기업가의 기능과 사회적 지위가 상실된다. 둘째, 합리성이 제도·규율·도덕에 전파되면서 불평등한 상황이 사라지고 시스템이 평등화 관점에서 재편된다. 셋째, 반자본주의적 지식계급이 등장하면서 자본주의 제도·환경을 파괴한다. 넷째, 자본주의 가치관이 무력화되고 평등·사회복지·정부 개입을 선호하는 풍조가 만연한다. 『경제발전의 이론』은 마르크스가 내세운 자본주의 붕괴론의 논리적 허구성을 드러내고 자본주의가 계속 유지되는 이유를 과학적으로 밝히고 있다. 기업가의 혁신이 존재하는 한 자본주의 경제는 영구적으로 발전할 수 있으며, 경제적 모순이라고 지적되는 경제공황도 자본주의 자체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슘페터는 경제발전이 없는 상태에서 발전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기업가의 혁신적인 활동이 있어야 하며, 발전을 가져오는 근본원인이 기업가의 혁신임을 밝힌다. 즉 경제발전은 기업가라는 개인이 혁신을 수행함으로 해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가라는 인간 개인의 혁신의지가 바로 경제발전의 추진 동력이 된다. 저자는 이 책을 과학적 정신을 가지고 사회현상에 대한 과학적 서술로 접근할 수 있는 이론서라고 밝힌다. 사회주의 방식의 이념적 태도와 주장을 경제학으로 오해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책의 제1판은 1911년 7월에 빈에서 출판되었다. 이후 제2판이 1926년에 나왔고, 제4판이 1934년 말에 나왔다. 우리나라에서 최근에 출판된 번역본은 2012년 지식을만드는지식의 책이다. 이 번역본은 1934년 독일어판을 원전으로 옮긴 것이다. 이 글의 인용문은 모두 이 책에서 가져왔다.
현대적 의미
우리나라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일 수 있었을까? 답은 분명하다. 시장경제에 충실한 해법을 빠르게 채택했기 때문이며, 그만큼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성공신화가 되었다. 경영학의 아버지라 불린 피터 드러커는 세계에서 가장 기업가정신이 충만한 나라로 대한민국을 꼽은 적이 있다. 바로 우리나라에서 혁신을 이끈 기업가가 많이 나왔고 빠른 경제발전을 이룰 수 있었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런 고도성장세가 1980년대 후반부터 하락하기 시작했다. 노사분규가 심각해지고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정부 규제가 시장경제와 기업의 앞길을 막았다. 공정거래법은 경쟁규제법으로 타락했으며, 중소기업고유업종제도·출자금액제한규제 등 수많은 규제가 투자를 방해했다. 그러면서 경제의 활동성은 떨어졌다. 기업의 경제적 환경은 점차 반기업정서로 가득 차고 기업가의 혁신을 기대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보다는 개악을 걱정할 정도로 환경은 악화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은 슘페터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우리 경제가 빠르게 성장한 원인을 혁신을 이끈 기업가의 출현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또한 경제성장 이후 1980년대 후반부터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적 성향과 제도적 개악으로 인해 경제가 위축된 것도 그의 이론에 의해 설명 가능하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은 슘페터가 걱정한 반자본주의적 성향의 지식운동의 득세로 인해 경제위축이 심화되고 자본주의 고유한 성질인 혁신이 일어나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었음을 드러낸다. 왜 세계에서 혁신적인 벤처비즈니스는 미국에서 나올까? 선진국도 많은데 유독 미국에서 혁신이 활발히 일어나는 것은 그만큼 그 사회가 자본주의 순수성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재산권을 보호하고 개인의 활동을 보호하는 도덕성을 유지하는 점이 다른 나라와 차별된다. 기업가의 혁신을 용납하는 건강한 자본주의 시스템인 것이다. 보호정책과 사회주의 복지정책으로 가득한 유럽이나 일본에서는 혁신과 새로운 기업가가 출현하지 못하고 관료화된 조직이 정체된 사회를 유지하고 있다. 자본주의가 위축되는 원인을 슘페터는 이미 1백 년 전에 이론적으로 설명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가 다시 혁신의 세계로 나갈 수 있을까? 지식인들의 반자본주의적 태도가 잘못된 방향임을 지적하고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래야 반기업적 규제와 제도를 친시장적 제도로 바꿀 수 있으며, 그런 제도적 개선에 의해 기업가의 혁신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지나친 평등의식과 보편적 복지정책이 가져오는 사회적 무기력 상태를 거두고 정부가 경제에 간섭하는 비중을 줄여 민간이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수 있는 공간을 넓히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공기업을 경쟁의 압력에 노출시키고 민영화함으로써 민간의 창의력과 경쟁압력이 새로운 경제활동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조기에 경제동력을 살리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경제활성화의 화두로 제시했다. 창조경제의 핵심은 사실 슘페터의 혁신에서 찾을 수 있다. 물론 혁신의 주체는 기업이고, 기업의 창조적 활동은 기업가에 의해 결정된다. 박근혜 정부가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바로 기업가의 핵심적 요소인 기업가정신이 발휘될 수 있는 정책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 반기업정서에 치우친 규제를 강화하면서 현신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것은 연목구어(緣木求魚)다. 경제는 시장경제논리로 풀어야 일자리도 늘고 경제도 산다. 이미 1세기 전에 슘페터가 경제발전의 핵심을 설명해 놨듯이 말이다.
그는 누구인가
슘페터는 1883년 2월 8일 오늘날 체코의 영토인 모라비아 지역에서 태어났다. 당시에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다. 직물공장을 경영하던 그의 아버지는 슘페터가 4살이 되던 해에 사망했다. 어머니는 오스트리아 장군과 재혼했고, 슘페터는 당시 오스트리아 귀족이 다니는 고등학교에 다니며 인문교육을 받았다. 그는 졸업 후 빈대학 법학부에 진학했다. 당시 법학부는 경제학과 정치학이 필수 과목이었기에 경제학을 접할 수 있었다. 1906년 빈대학을 졸업한 슘페터는 영국으로 가서 학자들과 교류를 넓혔다. 영국에 체류하던 1907년 글래디스 시버와 결혼하고 이집트 카이로로 가서 법률회사의 변호사로 일했다. 이집트 공주의 재산관리에서 큰 성과를 내 많은 보상을 받기도 했다. 카이로에 있는 동안 그는 첫 번째 저서인 『이론경제학의 본질과 주요 내용』을 집필하였다. 오스트리아로 돌아온 슘페터는 체르노비츠대학에서 1911년까지 교수로 재직했다. 이곳에서 『경제발전의 이론』을 집필했다. 그라츠 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그는 정교수로 1918년까지 근무하고, 다시 독일 베를린에 있는 독일 사회화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그는 오스트리아의 재무장관, 비더만은행의 행장을 맡기도 했지만, 다시 학문의 길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슘페터는 첫 번째 부인과 이혼한 후 라이징거와 1925년 재혼했지만, 그 다음해에 아내가 출산중 사망하고 같은 해에 모친이 사망하면서 큰 충격을 받았다. 이러한 개인적 불행이 슘페터를 비관적 태도의 학자로 만든 원인이라고 한다. 그는 1932년부터 1950년까지 하버드대학 교수로 있으면서 『경기순환론』 『자본주의·사회주의·민주주의』 등을 집필하였다. 슘페터는 미국에서 계량경제학회를 창립했고, 1948년에는 국제경제학회 회장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조지프 슘페터는 1950년 1월 8일 세상을 떠났다.
경제발전의 이론서
『경제발전의 이론』은 총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장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그의 이론의 특징은 동태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의 경제학자들이 정태적 균형상태로 설명했지만 슘페터는 내부적 요인과 외부적 요인에 의해 경제가 변화하는 동태적 이론을 정립한 것이다. 보통 경제학을 공부하다보면 뭔가 빠진 것을 발견하게 된다. 수요와 공급에 대한 이론적 설명이 있고, 공급을 결정하는 요인으로 생산비용을 따지지만 정작 기업의 의사결정 주체인 기업가가 빠져있다는 점이다. “독자는 우리의 논의 속에 발전이라는 것 이외에 여전히 다른 뭔가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선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알고 있는 경제인의 모든 원형들을 그 속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단지 노동자와 토지소유자를 갖고 있는데 불과하다. 그 중에는 기업가가 빠져 있다.” 그는 기업가와 자본가를 구별한다. 자본가가 주주가 되어 이자 취득 대신 이윤을 얻는다고 해서 기업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가는 생산요소를 결합하고 종합하는 것이 기본적인 기능이다. 여기에 창의성, 권위, 선견지명 같은 표현 방식을 통해 통상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 여기에 추가적인 특징을 더해 보면, “누구든 ‘새로운 결합을 수행하는’ 경우에만 기본적으로 기업가이고-따라서 그가 한번 창조된 기업을 단순히 순환적으로 경영해간다면 기업가로서의 성격을 상실하는 것이다-또 그런 까닭에 수십 년간의 노력을 통해 항상 기업가로 머물러 있는 사람은 드물다. 역으로 아주 사소한 어떤 기업가적 요소도 가지고 있지 않은 사업가가 존재한다는 것도 드문 일이다.” 정태적 균형상태에서 이윤이 존재하기 어렵다. 순환하는 경제에서 일정 수준의 소득이 재생산되는 과정을 반복할 뿐이다. 이때에는 질적인 변화는 없다. 이런 완전균형상태에서 가격은 늘 최소 평균비용과 일치하게 된다. 기업가의 역할이 발휘되지 않는 상태다. 슘페터는 이런 균형상태에서 이자 지급의 손실도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자금을 차입할 이유가 없을 수 있다고 보았다. 즉 혁신을 통한 이익이 발생해야 자금을 빌릴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자는 차입 가격인 셈이다. 사실 완전균형 상태에서는 이윤이 존재할 여지가 없다. 완전경쟁모델을 가정하는 경제학은 이런 정태적인 상태를 이론의 기반으로 삼았다. 하지만 현실이 늘 이런 상태를 유지하지는 않는다. 기업가의 혁신에 따른 변화가 나타나고 그 결과로 이윤이 발생한다. 또 장기적인 발전의 결과로 그 산업은 호황을 맞는다.
기업가에게 신용이 제공되어야 하는 이유 혁신을 성공적으로 실현하는 데 자금이 필요하다. 산업발전을 위해서는 기업가에게 신용이 제공되어야 한다. “신용의 공여는 기업가가 필요로 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수요를 일으키면서 이것을 과거 용도에서 빼내어 경제를 강제적으로 새로운 궤도에 오르게 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이처럼 신용은 기업가의 혁신을 가능하게 하는 기능을 핵심적으로 가지고 있다. “신용이란 본질적으로 기업가에게 양도할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구매력 창조이며, 그에 대해서 단순히 기존의 구매력을 양도하는 것은 아니다. 원칙적으로 구매력의 창조는 봉쇄적이지 않는 경제에서 경제발전이 수행되는 방법을 특징짓는 것이다. 신용은 기업가가 재화에 대한 정상적인 청구권을 획득하기 이전에, 그들에 대해서 경제적인 재화의 흐름에 대한 문호를 획득하기 이전에 그들에 대해서 그 문호를 여는 것이다. 그것은 이른바 청구권의 허구를 일시적으로 청구권 자체로 대체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신용공여는 경제를 기업가의 목적으로 복종시키는 명령, 그가 필요로 하는 재화에 대한 지시로서 작용을 하고 있다. 그것은 그에 대한 생산력의 위탁을 의미한다. 이와 같이 하고 나서야 비로소 경제발전이 수행되며 단순한 순환의 영역을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기능이야말로 근대 신용기구의 초석을 이루는 것이다.” 여기서 “자본이란 기업가가 필요로 하는 구체적 재화를 그의 지배 하에 둘 수 있도록 하는 지렛대이며, 또한 새로운 목적을 위해 재화를 처분하기 위한 수단 혹은 생산에 새로운 방향을 지시하는 수단인 것이다. 이것이 자본의 유일한 기능”이다. “이런 의미에서 기업가는 소비재와 생산재를 교환한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그래서 자본은 소비재로 구성되는 것으로 널리 알려야 한다. 그런데 그 경우에서조차 기업가에게 가치가 있는 것은 소비재의 질이 아니라 다만 소비재의 구매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본이란 언제라도 기업가의 자유에 맡겨지는 화폐 및 기타의 지불수단의 금액이라 정의할 수 있다.” 따라서 기업의 “자본금이란 사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생산수단에 대한 지배력, 즉 구매력의 총액이다.”
혁신의 결과는 기업가 이윤 혁신에 의해 창출되는 기업가 이윤은 기업가에게 돌아간다. 기업가 이윤은 임금이나 이자와는 다르다. 또한 “기업가 이윤은 지대가 아니다. 즉 경영의 지속적 요소가 갖는 차별적 이익에 대한 수익과 같은 지대가 아니다. 자본을 어떻게 정의하든지 간에 그것은 자본 이윤도 아니다.” 기업가 이윤은 임금과 완전히 다르다. “이윤은 확실히 단순한 잔여가 아니다. 그것은 임금이 노동자가 만든 것의 가치 표현인 것과 아주 동일한 의미에서 기업가가 만든 것의 가치 표현이다. 그것은 착취 임금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착취 이윤이 아니다. 임금만은 노동의 한계생산성에 따라 결정되지만 기업가 이윤은 이 법칙에 따라서 결정되지 않는 확실한 예외다.” “임금은 가격요소지만 기업가 이윤은 동일한 의미에서 가격요소가 아니다. 임금 지불은 생산 억제 요인의 하나지만 기업가 이윤은 그렇지 않다.” 임금은 수익이 규칙적으로 이뤄지는 반복성을 갖고 있다. 반면 기업가 이윤은 그렇지 않다. 따라서 “기업가 이윤은 절대로 소득 분야가 아니다. 그것은 기업가 기능이 수행되자마자 기업가의 손에서 벗어나버린다. 그것은 새로운 일의 창조와 관련이 있고, 발전 가치 즉 장래 가치 체계의 실현과 관련이 있다. 그것은 발전의 총아임과 동시에 희생이다.” “발전 없이 기업가 이윤은 없고, 기업가 이윤 없이는 발전이 없다. 자본주의 경제에 대해 기업가 이윤 없이는 재산형성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덧붙여 설명해야 한다. 재산 형성 없이는 적어도 우리가 직접 목격하는 커다란 사회현상은 없다. 재산 형성은 확실히 발전의 결과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기업가 이윤의 결과다.” “기업가 기능은 끊임없는 경제 재구성의 수단일 뿐 아니라 또한 사회의 상층계급을 구성하는 모든 요소를 끊임없이 변화시키는 수단인 것이다. 성공한 기업가는 사회적으로 지위가 상승”하게 된다. 이 같은 “사회적 지위의 상승은 자본주의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추진력인 것이다.” 물론 성장하는 이면에는 몰락도 존재하게 된다. “무기력한 기업가를 위협하기도 하고 혹은 자신의 능력 없이 부를 상속받은 상속인을 위협하기도 한다.”
기업가 이윤이 이자의 원천
이자는 정상적인 경제에서 발생하는 하나의 요소임에 분명하다. “이자는 미래의 구매력에 대한 현재 구매력의 프리미엄이다.” 이자를 소비적 이자와 생산적 이자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특히 “생산적 이자는 기업가 이윤 속에 그 원천을 갖고” 있기 때문에 기업가 이윤의 파생적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정태적 상태에서 “총생산물의 가치는 근본적인 생산요소, 즉 노동 용역과 토지 용역에 귀속되어야만 하고, 따라서 총생산수입은 노동자 및 토지 소유자에게 분배되어 임금 및 지대 이외에는 지속적인 순소득은 존재할 수 없다”고 할 수 있다. 이런 균형상태가 연속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경쟁은 항상 가치의 균등이 성립될 때까지 그 생산물의 가치와 가격을 압박 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발전이 없다면, 언급된 조건하에서는 어떤 이자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이자는 발전이 경제적 가치들의 바다에서 발생시키는 거대한 파도들의 한 부분이다.” 하지만 “이 이윤은 그 자체로는 이자일 수 없다. 왜냐하면, 그것은 지속적이지 않고 경쟁의 출현에 의해 머지않아 소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자는 결국 기업가 이윤에서 유출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순간적이며 항상 변동하고 있는 기업가 이윤, 말하자면 확실히 상항 존재하고 있지만 개별적으로는 항상 일시적이고 또한 확실히 지속적으로 나타지만 개별적으로는 지속적으로 체감해가는 기업가 이윤에서 어떻게 끊임없이 동일한 자본에 대해서 무한하게 지속할 이자소득이 나타나는 것일까?” 심지어 “기업가가 필요로 하는 재화를 이미 지배하고 있을 경우에는 유통경제에 있어서도 생산은 이자 없이 이루어진다.” 본질적으로 “이자는 생산재에 대한 지배수단으로서 간주되는 구매력의 가격요소다.” 분명한 것은 “돈을 빌린 사람이 받은 금액의 효용은 그가 갚아야 할 금액의 효용보다도 클 수가 있다는 의미에서, 돈을 빌린 사람은 그가 갚아야 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는다고 항상 말할 수 있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서는 받은 가치량은 반환하는 가치량보다도 커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일반적으로 그 거래를 이루지 못할 것이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순환의 경우에’ 이자가 극히 미미한 중요성만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것뿐이다. 다만 한두 명의 고리대금업자가 이자에 의해 생활할 수 있는 데 불과할 것이다. 이자의 지불은 변칙으로 생각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이자를 순환에서 제외한 것이 정당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자는 여기에 있어서는 확실히 경제과정의 본질적 요소가 아닐 것이다.” “발전이 이루어지는 과정에서만은 상황이 이것과 다르다. 이 경우에만 나는 나의 생산물에 대해서 보다 큰 매상을 획득할 수 있다. 즉 내가 100의 화폐단위에 의해 구입한 여러 가지 생산력의 새로운 결합을 수행하고 보다 새로운 고가의 생산물을 시장에 공급한다면, 나는 실제로 보다 많은 금액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생산수단의 가격은 이와 같은 용도를 고려해서 결정된 것은 아니며, 종래 용도만을 고려해서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경우에는 화폐액의 소유는 보다 큰 화폐액을 낳기 위한 수단이 된다. 이 때문에 그리고 이 한도에서 사람들은 기업경영에 있어서 현재액을 장래 그것과 비교해서 규칙적으로 또 체계적으로 보다 높게 평가하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화폐액은 소위 잠재적인 보다 큰 화폐액으로서 가치프리미엄을 가지고 이것에 의해 가격프리미엄을 갖게 된다. 여기에 이자에 대한 설명이 있다. 발전에서는 신용 공여와 신용 획득이 경제과정의 본질적 부분이 된다. 여기에는 ‘상대적인 자본부족’이라든가 ‘자본수요에 대한 자본공급의 부족’ 등의 표현에 의해 제시되는 모든 현상이 나타난다. 국민경제의 재화 흐름이 보다 광범위하고 보다 풍부해질 때에만 이자가 정밀하게 나타나고, 마침내 우리는 현저하게 그 영향 하에 놓여지게 되는 것이다. 그 결과 인간이 경제활동을 이루는 곳에는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이자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간파하기 위해서는 오랜 분석적 연구를 필요로 하게 된다.” 기업가 이윤은 시장의 과정을 거쳐 생산적 이자가 된다. 이자는 (-)일 수 있으나 일반적으로 (+)가 된다. 이자의 순수한 측면을 보면, “우리는 이자가 자본주의적 발전의 산물이 며, 자본주의 이외의 경제에서는 이것에 상응하는 독립적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가장 명료하게 보는 것”이 된다. 그럼으로 인해 “이미 발전이 없는 국민경제에서 저축의 의미가 상대적으로 극히 미미하다”고 할 수 있다. “이자가 높은 상태는 국민경제가 번영하고 있다는 하나의 지표라고 일반적으로 말할 수 있다. 주로 소비적 이자만이 존재하고 있는 원시적인 국민경제와 몰락하고 있는 국민경제의 경우를 별도로 하면 이자의 상승은 항상 국민경제 번영의 직접적인 결과다.” 그러나 “이자의 높은 상태는 활발한 발전의 징후임과 동시에 이것에 대한 억제요인이기도 하다. 이러한 이중성격에서 실제적이고 학문적인 논의에서 볼 수 있는 이자에 대한 각종 다른 평가가 설명되는 것이다.”
경기순환은 정상적인 경제과정
슘페터는 경제발전과 경기순환의 연관성을 설명한다. 순환의 요인이 발전을 가져오기도 하고 발전에 따라 순환이 발생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호황과 불황의 순환 현상은 결코 경제발전의 장애물이 아니며 자본주의의 실패가 아니라 정상적인 과정이다. 즉 경기불황이나 침체는 대부분 번영기에 나타난 혁신의 결과물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 상태에서 가격하락과 함께 일어난 현상에 불과하다. 따라서 경기순환은 경제발전의 정상적이고 건강한 과정의 일부이므로 부정시할 이유가 없다. “관찰되는 패닉은 때때로 공황돌발의 요인이라기보다도 오히려 그 결과다.” 번영을 원한다면 그 뒤를 따라오는 불황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다. 더구나 경기 침체기에는 구조조정을 할 수 있어 새로운 방식들이 낡은 방식을 대체하고 비혁신적인 조직을 제거할 수 있다. 이를 슘페터는 ‘창조적 파괴의 질풍노도’라고 설명했다. “새로운 기업의 대량출현이 구 기업의 생존조건에 미치는 영향과 국민경제의 관행화된 상태에 미치는 영향이 그것이다. 그 경우 설명된 사실, 즉 통상적으로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에서 싹트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오래된 것과 함께 등장해서 오래된 것을 도태시키고 모든 관계를 변화시켜서 그 결과 하나의 특수한 ‘질서화의 과정’이 필요하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고려해야 한다.” 슘페터는 경기변동을 슈피토프의 말을 인용해 설명한다. “경기변동은 자본주의의 생존양식이다.” 이처럼 경기변동 그 자체가 자본주의의 본질적 속성이며 혁신과 발전이 그 속에서 함께 이루어진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의 경기변동이론이 “시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경제변동의 논리적 자기완결 모델을 제공한다”고 말한다. 혁신이 가져오는 장기적인 발전과정은 파동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데, 통계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세 개의 장기파동이 있었다. 첫 번째 장기파동은 산업혁명이다. 두 번째는 1840년대에 시작한 증기기관과 강철 산업이다. 세 번째는 1890년대에 시작해 1930년대까지 이루어진 전기·화학·자동차 산업이다. 이들 모두 새로운 상업을 통해 기존의 균형이 파괴되는 현상이 분명하게 나타났다. “왜 발전의 진행은 연속적으로 진행되지 않고 단속적으로, 즉 상승운동 다음에 하강운동이 이어져서 이 하강운동을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다음의 상승운동이 시작된다고 하는 식으로 진행되는 것일까? 그 해답은 충분히 간단하거나 정확할 수 없다. 왜냐하면 전적으로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즉, 새로운 결합의 수행은 확률의 일반적 원리에서 기대되는 것처럼 시간적으로 균등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새로운 결합이 이루어진다고 한다면 그것은 무리를 지어 불연속적으로 출현할 것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그런 결과로, “불황의 유일한 원인은 호황이다”라는 쥐글라의 명제는 “불황은 호황에 대한 국민경제의 반응이며, 호황이 국민경제에 초래한 상황의 극복인 것이며, 따라서 불황의 설명도 호황 설명에 연유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불황에 대처하려는 정부의 정책 시도는 늘 일어난다. 그 효과성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크다. “결국 가장 중요한 그리고 어떠한 이론이든 반대하지 않는 유일한 치료법은 경기예측의 개선이다. 기업가들이 경기순환에 대해서 점점 더 정통해져 갔다는 것은 확실히 트러스트화의 진행과 더불어 전환점에서 전환점까지의 본래적인 공황현상이 더욱더 약해지게 된 것에 대한 주요한 이유다.” “그러나 어떠한 치료법도 기업·개인적 지위·생활형태·문화적 가치·이상 등의 쇠퇴라는 큰 경제적·사회적 과정을 막을 수는 없다. 사유재산과 경쟁의 경제에 있어서 이 과정은 항상 새로운 경제적인 형태와 사회적 형태를 탄생시키는 번성의 필연적인 보완물이며, 또 모든 범주의 경제주체의 지속적인 소득증가에 필연적인 보완물이다. 만약 파장운동이 존재하지 않으면 이 경과는 좀 더 평온할 것이다. 그러나 이 경과는 파장운동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부에서도 실현된다. 매우 오랫동안 모든 분석적 관심이 상대적으로 불변인 소유상태의 기능에 집중되어 있으나, 번성과 쇠퇴라는 이 양자는 이론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상대적으로 불변인 소유상태의 존재보다 훨씬 중요하다. 그리고 개인과 기업의 흥망성쇠라는 이 양자는 그들의 특수한 방식에서 경기순환에서 관찰될 수 있는 어떤한 것보다도 훨씬 자본주의의 경제, 문화 그리고 모든 결과에 대해서 특징적인 것들이다.”
[출처] 조지프 슘페터의 『경제발전의 이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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