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神學/神學資料

사무엘 Samuel

by 이덕휴-dhleepaul 2019. 12. 26.

사무엘 -Samuel                        


요약 사무엘은 <구약성서>에서 지도자 역할을 모두 맡은 인물로 등장한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판관시대가 끝나고 왕정시대가 열리는 시기에 마지막 판관이었으며, 하느님 야훼의 계시에 따라 초대 왕 사울과 2대 왕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웠다.
사무엘에 관한 정보는 〈사무엘 상〉에 실려 있다. 그는 엘카나와 한나의 아들로서, 자녀를 낳지 못하던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태어났다.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에벤에젤에서 팔레스티나인 사람들을 크게 무찔렀다. 야훼의 계시를 받은 그는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이스라엘의 지도자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사울은 제사장의 권한을 가로채는 등의 행동을 보였고, 이에 사무엘은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야훼의 계시를 선포했다. 이어 야훼의 계시에 따라 비밀리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다.

사무엘(Samuel)

ⓒ Butko/wikipedia | Public Domain

개요

〈구약성서〉에서 당시 유대인 남자가 맡을 수 있었던 지도자 역할(선지자·제사장·판관·예언자·군대지휘관)을 모두 맡은 인물로 등장한다.

가장 뛰어난 점은 왕정(王政) 수립과정에서 한 역할이었다.

성서에 나오는 그의 생애

사무엘에 관한 정보는 〈사무엘 상〉에 실려 있다.

2권의 책에 사무엘이라는 명칭이 붙었다고 해서 그가 이 책의 저자(실제로 그의 죽음이 〈사무엘 상〉 25장에 언급되어 있음)나 주인공임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사실상 어떤 의도로 이 책에 그러한 명칭을 붙였는지 추론하기는 어렵다.

사무엘은 엘카나(에브라임 지파 출신)와 한나의 아들로서, 자녀를 낳지 못하던 어머니의 기도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으로 태어났다. 한나는 감사하는 마음에서 아들을 실로의 주요성소에서 봉사할 사람으로 봉헌(奉獻)하도록 제사장 엘리에게 맡겼다.

이곳에서 소년 사무엘은 엘리의 가문이 몰락할 것을 예언하는 계시를 받았다(Ⅰ사무 1~3).

어른이 되었을 때는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에벤에젤에서 팔레스티나인(불레셋)사람들을 크게 무찔렀다(I사무 1~3). 그뒤 이스라엘 장로들이 왕을 세우자고 제의하자 사무엘은 이를 하느님 야훼에 대한 이스라엘의 불충으로 간주하고 분개하면서 거절했다(8). 그러나 야훼의 계시를 받은 뒤, 사울에게 기름을 부어 온 이스라엘 앞에 왕으로 세웠다(9~10). 사울은 이스라엘 군대를 효과적으로 지휘하여 암몬군을 무찌름으로써 왕의 자질을 입증했다(11). 이런 일이 있은 후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12). 그러나 뒤에 다시 등장하여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야훼의 계시를 선포했다.

그 이유는 사울이 제사장의 권한을 가로챘고(13), 그가 아말렉 사람들에 대해서 내린 금지법(대체로 사람이나 물건을 죽이거나 파괴함으로써 신에게 바치는 원시법)을 실행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15). 사무엘은 야훼의 계시에 따라 비밀리에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았다(16). 그뒤 한동안 등장하지 않다가 얼마 뒤 나욧 성소에 나타났다(19). 죽은 뒤 사울의 요청으로 무당이 불러내자 혼백으로 나타났다.

이때 사무엘의 혼백은 3번째로 사울에 대해 배척을 선언했다(28).

사무엘에 관한 상충되는 전승들

사무엘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등장하여 전쟁을 수행하고 법을 시행하는 면에서 지도력을 행사했다.

그의 권위는 근본적으로 종교적인 것이며, 어느 정도 제사장적 권위도 포함했지만 대체로 예언자적 권위였다. 〈사무엘〉에 보면 그는 처음에는 왕정에 반대했다가 나중에는 찬성하며, 야훼를 대변해 사울과 다윗을 왕으로 임명했다고 기록되어 있으나 이는 확실하지 않다. 수많은 비평 사가(史家)들이 그랬듯이 사무엘의 역사와 이 역사가 보존되어 있는 자료 모두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의문을 일으키는 모순이 드러난다.

이러한 분석에 따르면 현재 남아 있는 자료의 어느 것도 그 안에 담긴 사건들과 같은 시기의 것이 아니다. 만일 한 자료를 주된 것으로 받아들일 경우 다른 자료들은 모든 역사적 가치를 잃어버리게 된다.

2가지 주요차이점은 비평가들이 '친왕정'(promonarchic)자료라고 부르는 본문들(Ⅰ사무 9:1~10:16)과 '반왕정'(anti-monarchic)자료라고 부르는 본문들(Ⅰ사무 8, 10:17~27)에 있다.

여기서 '자료'라는 단어의 뜻은 재구성할 수 있는 가설 문서라기보다는 전승을 가리킨다. 친왕정 입장에서 쓴 사울의 즉위 이야기에서 사무엘은 무명의 시골 선지자(독특한 초자연적 증거와 함께)로 등장한다. 또한 사무엘에게 계시된 야훼의 뜻에 따라 왕정이 수립되고 왕이 선출된다. 그러나 기름을 붓는 이야기에서 사울이 왕으로 즉위하는 내용 대신 사울이 암몬군을 물리친 이야기가 나온다. 자세히 검토해 보면 이것은 기름을 붓는 의식을 하지 않고 사울이 즉위한 이야기임이 드러난다. 사울은 판관들(가나안 땅을 정복할 때 이스라엘 백성을 이끈 지도자들)이 무용(武勇)과 지도력을 탁월하게 발휘하여 선출된 것과 같은 방법으로 왕이 되었다.

이 이야기에서 사무엘의 등장은 매우 어색하다.

〈사무엘〉에서 반왕정 자료는 왕권·사울·사무엘에 관해 다르게 기록하고 있다. 사무엘은 '온 이스라엘'(당시에는 불확실한 용어)에 알려진 인물로 등장하며 판관이라는 지위에 근거하여 권위를 행사한다. 왕정 수립은 신의 계시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 원로들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것이고 사무엘은 이들의 요청을 야훼에 대한 반역으로 취급한다.

왕은 신의 선택이 아닌 제비뽑기로 선출되는데, 이것은 왕이 될 사람에게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음을 뜻하며, 이 수줍은 왕 후보자 사울은 숨어 있다가 부름을 받았다. 이 이야기는 7장과 12장의 판관 사무엘의 이야기와 연관되며, 여기서 사무엘은 분명히 마지막 판관으로 묘사된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판관체제를 배척한 이유에 대해서도 그 체제의 결함 때문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세속화되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이 전승에는 2가지 의문점이 있다.

즉 사무엘은 군대 지휘관과 영구적인 통치자를 겸한 유일한 판관이라는 점과 7장에서 그가 필리스티아를 무찌른 것은 역사적 사실일 수 없다는 점이다. 비평가들은 사무엘의 탄생과 소명(召命) 이야기에는 비(非)역사적인 특징들이 많이 나타나기 때문에 전설로 간주한다(→ 색인:유대교). 이 기록은 예언자로서의 사무엘의 역할에 대해 언급하지만, 이 시기에 예언자가 유명한 종교 지도자로 등장했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만하다.

이 이야기는 또한 사무엘이 제사장의 역할을 담당했다는 후대의 기록(Ⅰ역대 6)의 기초가 되며, 이는 사무엘이 행한 종교적 역할을 후대의 제사장직에 비추어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에게 버림을 받는 이야기에도 2가지 전승이 있다. 첫번째 이야기(Ⅰ사무 13)에서는 사울이 제사장의 특권을 가로챈 일이 동기가 되는데 그당시 왕의 권력이나 제사장의 특권에 대해 이처럼 상세히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2번째 이야기(Ⅰ사무 15)에서는 사울이 성전(聖戰)의 윤리를 지키지 못한 일이 동기가 된다.

이 이야기는 첫번째 이야기보다 신빙성이 있다. 사건의 자세한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지만 사울과 사무엘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확실한 전승이 있었던 것 같다.

중요성

사무엘이 왕정수립에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로 기억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가 예언자·선지자·판관으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신빙성이 없다. 이 문제는 이 자료가 기록될 당시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나가는 투로 얼핏 언급한 사무엘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규명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다. 이 역할이란 입신(入神)의 상태에서 예배하기 위해 조직된 청년 집단인 여러 예언자 수련생들을 지도하는 것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이들은 종교적 열광주의자 및 민족적인 보수주의자들이었다.

이들은 젊고 활동적이었기 때문에 사무엘에게 도덕적이면서도 물리적인 권력 기반을 마련해 주었다. 보수주의자였던 그들은 필리스티아 사람들이 이스라엘에게 준 위협과 종교 및 민족의 전통과는 낯선 새로운 정치체제(왕정)가 이 위협을 막아 줄 것이라는 약속 사이에서 분명히 의견이 갈라졌을 것이다. 이스라엘에서 발생한 이러한 내분이 사무엘이라는 인물에 반영되었으며 그는 양편으로 갈라진 대부분의 이스라엘 사람들을 대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