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조 폭군이라 일컬었던 연산군이 즉위하던 때에 내렸던 赦令에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으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용서할 수 있는 죄와 그렇지 않은 죄가 있다. 참고하여 올린다.
출처: 선왕조실록 > 연산군일기 > 연산군 즉위년 갑인 > 12월 29일 > 최종정보
연산군 즉위년 갑인(1494) 12월 29일(갑신)
00-12-29[04] 미시에 성복하다. 의례를 마치고 중외에 사령을 반포하다
미시(未時)에 성복(成服)하였는데, 왕세자는 최질(衰絰)을 입고 왕자(王子) 및 종친(宗親) 문무 백관(文武百官)은 모두 최복(衰服)을 입고 들어와 자기의 위차(位次)에 나아가 엎드려 곡하고, 대전관(代奠官)이 술을 잔에 부어 전(奠)을 드리고 나서, 왕세자 이하는 여차(廬次)로 돌아가고 백관이 차례로 나갔다. 왕비 및 세자빈(世子殯)과 내ㆍ외 명부(內外命婦)가 상복을 입기를 의례(儀禮)대로 하고 마쳤다. 도승지가 유교함(遺敎函)을 찬궁(欑宮) 남쪽에 갖다놓고, 상서원(尙瑞院) 관원이 대보(大寶)를 그 남쪽에 놓았다.
종친과 문무 백관이 조복(朝服)으로 바꾸어 입고 문밖의 위차(位次)에 나아갔다. 좌의정 노사신이 빈전의 동남 모퉁이에 나아가 엎드렸다. 왕세자가 최복을 벗고 면복(冕服)을 갖추고 나오매, 좌통례(左通禮)가 왕세자를 인도하여 동문으로부터 들어와 위차에 나아갔다. 사신(思愼)이 찬궁 남쪽 탁자 앞에 나아가 꿇어앉아서 대보(大寶)를 받들고 서쪽으로 향하여 서고, 왕세자가 동계(東階)로 부터 올라와서 향안(香案) 앞에 나아가 꿇어앉았다. 사신이 대보를 왕세자에게 주니, 왕세자가 받아서 근시(近侍)에게 주고 내려가 위차에 나아가 네 번 절하고 나서 서문으로 나갔다. 근시가 대보를 받들고 앞서고 종친 문무 백관이 차례로 나갔다.
왕(王)이 인정전(仁政殿) 처마 밑에 자리잡고 의례대로 백관의 하례(賀禮)를 받고서, 여차(廬次)로 돌아가서 면복(冕服)을 벗고 도로 상복을 입었다. 종친 문무 백관이 문밖에 나가서 최복을 입고, 도로 뜰안으로 들어왔다. 사령(赦令)을 중외에 반포하며 교서(敎書)를 내렸다.
“내가 생각하건대, 우리 대행 대왕께서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로서 조종의 간대(艱大)한 업(業)을 이어받으시어, 일찍 일어나고 수라를 늦게 잡수시며 정신을 가다듬어 정치에 애쓰시기에 26년이었도다. 문교(文敎)가 성하게 일어나고 무공(武功)이 빛나도다. 백성이 편안하고 물자가 풍부하여 덕택이 사방에 흐뭇하였고, 예문(禮文)이 갖추어지고 음악이 화(和)하여 교화(敎化)가 선대보다 빛났으니, 높고 높고 넓고 넓어서 이름 지을 수도 없었다. 큰 덕은 반드시 수(壽)를 얻는 것이므로 그지없는 복을 누리시리라 기약하였더니, 하느님이 우리 집에 화(禍)를 내리셔 선왕이 승하하심에 뒤따르지 못함이 애통하도다. 어찌 다만 종묘 사직의 큰 불행일 뿐이랴! 실로 신민의 복이 없음이로다! 하늘에 호소하고 땅에 부르짖노니, 슬프도다! 나는 무엇을 믿을꼬! 바야흐로 외롭고 근심하며 상중에 있는데 어찌 차마 곧 왕위에 오르랴마는, 대통(大統)을 오래도록 비울 수 없고 신기(神器)를 잠시도 비울 수 없으므로, 이에 마지못해 12월 29일 갑신에 창덕궁에서 즉위하며, 인수 왕대비(仁粹王大妃)ㆍ인혜 왕대비(仁惠王大妃)를 높여서 대왕 대비로 하고, 대행 왕비를 높여서 왕대비로 하고 빈(嬪) 신씨(愼氏)를 왕비로 하는도다.
이에 나라를 이어받는 처음이니 마땅히 대사(大赦)하는 은혜를 베풀어야겠기에 이날 새벽 이전의
모반(謀反)ㆍ대역(大逆)ㆍ모반(謀叛) 죄, 자식이나 손자가 조부모ㆍ부모를 죽이려고 꾀하거나 때리거나 욕한 죄, 독약을 쓰거나 요망한 방술로 인명을 상해한 죄, 강도범(强盜犯)
외의 죄는 발각되었든 안 되었든, 판결되었든 안 되었든 다 용서하며, 사령(赦令) 전의 일을 가지고 서로 고발하는 자는 그 죄를 처벌할 것이며, 직첩(職牒)을 빼앗았던 자는 도로 내어 주며, 도(徒)ㆍ유(流)ㆍ부처(付處)ㆍ충군(充軍)된 자는 모두 석방하노라.
아아! 조종께서 나에게 나라를 맡기시매, 깊은 못에 다가서고 얇은 얼음을 건너는 듯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노니, 오히려 신하들의 보좌에 힘입어 길이 태평한 정치를 이룩하리로다.”
【원전】 12 집 626 면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법-행형(行刑)
[주-D001] 찬궁(欑宮) : 빈전 안의 임금의 관(棺)을 둔 곳.[주-D002] 좌통례(左通禮) : 이조 때 통례원(通禮院)의 으뜸 벼슬.[주-D003] 교서(敎書) : 임금이 명령 또는 유시하는 글. 특히 임금이 친히 행하는 형식을 취하며, 전 국민 등 그 대상이 넓은 것이 보통이다. 중국의 진 시황(秦始皇)이 천자의 명령을 조칙(詔勅)이라 고쳐 그 글을 조서ㆍ칙서라 하고, 제후 왕은 교서라 하였다.[주-D004] 신기(神器) : 왕위에 따르는 옥새(玉璽) 등 보기(寶器). 또 왕위를 말함.[주-D005] 모반(謀反)ㆍ대역(大逆)ㆍ모반(謀叛) : 《대명률(大命律)》 10악조(十惡條)에, 사직을 위태롭게 하려 꾀함을 모반(謀反)이라 하고, 종묘ㆍ산릉ㆍ궁궐을 훼손하려 꾀함을 대역이라 하고, 본국을 배반하여 타국을 몰래 좇음을 모반(謀叛)이라 하였음.[주-D006] 도(徒)ㆍ유(流)ㆍ부처(付處) : 도는 강제 노동에 복역하게 하는 형벌. 유는 섬이나 먼 변방에 귀양보내는 형벌. 부처는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 귀양 보내되 가족과의 동거가 허락되는 형벌.
ⓒ 한국고전번역원 | 성낙훈 (역) | 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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