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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근심 있는 새 해, 근심 없는 새 해

by 이덕휴-dhleepaul 2021. 1. 31.

날자: 2021년 1월 31일 주일 낮 예배

말씀: 고후 7:5-11

제목: 근심 있는 새 해, 근심 없는 새 해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를 처음 방문했을 때 세운 교회입니다. 교회가 서기는 했지만 그 안에는 많은 도덕적 문제들과 당파와 분열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그가 세운 교회가 점점 더 위태로워지는 상황을 수습하기 위해서 두 번째로 고린도를 방문했습니다. 그러나 그 방문은 바울에게 매우 고통스러운 방문이었습니다. 그때 그는 거짓 사도라는 비난도 받고 예루살렘 교회를 위하여 모금한 연보에서 이득을 취했다는 오해도 받는 등 심한 모욕과 반대에 부딪쳤으며 그와 고린도 교회 사이에는 긴장관계가 지속되게 되었습니다. 고린도를 떠나온 사도 바울은 그가 계획했던(고후1:16) 대로 또 다시 고린도를 방문하는 대신 그가 고린도에 머물 때 그 교인들이 보여준 행태를 엄하게 꾸짖는 편지를 썼는데 그 편지는 지금 없지만,

 

<눈물의 편지>라는 이 편지에 관해 사도 바울은 고후1:23과 2:1과 3-4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 내가 다시는 너희에게 근심 중에 나아가지 아니하기로 스스로 결심하였노니 ...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갈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자로부터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모두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모두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내가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바울 자신이 “마음에 큰 눌림과 걱정이 있어 많은 눈물로” 썼다고 했고 분명 강경하며 격정적이고 비판적인 어투로 썼을 그 편지는 고린도 교회 신자들을 근심하게 하지 않을 수 없는 편지였지만 사실은 그가 고린도 교회 신자들에 대해 사랑이 넘치기 때문에 쓴 편지였고 고린도 교회와의 화해와 신뢰관계의 회복을 간절히 바라는 편지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대신 디도를 고린도에 보내며 이 편지를 교인들에게 전하게 했습니다. 디도를 고린도로 보내고 난 바울은 에베소를 떠나 드로아로 갔습니다. 드로아는 에베소의 북쪽에서 마게도냐와 마주보고 있는 소아시아의 도시였습니다. 에베소에 훨씬 더 가깝기는 했지만 어쨌든 에베소에서 육로로 고린도로 가기 위한 중간지점이었기에 거기서 바울은 디도를 다시 만나 그로부터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자기의 편지를 받아 본 결과를 보고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기대했던 대로 드로아에서 디도를 만나지 못했고, 그래서 고린도 쪽으로 더 가까운 마게도냐로 건너갔습니다.

고후2:12-13에서 사도 바울 자신이 그렇게 썼습니다: “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하여 드로아에 이르매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 내가 내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하므로 내 심령이 편하지 못하여 그들을 작별하고 마게도냐로 갔노라.” 복음을 전하러 드로아에 가긴 했지만 그의 마음은 디도를 빨리 만나는 데 더 가 있었으며, 그러기에 거기서 전도의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디도를 만나지 못하자 마음이 편안하지 못해 다시 마게도냐까지 건너갔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의 애착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를 엿보게 하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마게도냐에서 고린도로부터 돌아오는 디도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도는 고린도 교회 신자들이 사도 바울의 눈물의 편지를 받고 회개하는 등 상당한 성과가 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바울은 기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그 기쁨을 글로 표하며 또한 고린도 교회 교인들이 가졌던 근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설명한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1. 사도의 권면

 

사도 바울은 이전에 쓴 편지에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을 아주 호되게 책망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책망 때문에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많은 근심을 했었습니다. 고린도교회는 교회 안에 온갖 문제가 가득한 교회였습니다. 근친 상간문제, 소송문제, 혼인문제, 우상제물 문제, 은사 문제 등등 골치 아픈 문제가 말도 못할 정도로 많아 사도 바울이 심하게 책망을 했던 것입니다.

심지어 고전 16:22절에서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고 까지 했습니다. 그 책망 때문에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큰 근심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크게 후회를 했었습니다. 그런데 도리어 그 근심케 한 책망이 전화위복이 되어 교린도교회의 성도들이 회개하고 바른 신앙을 회복하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에서 사도 바울은 “그러므로 내가 편지로 너희를 근심하게 한 것을 후회하였으나 지금은 후회하지 아니함은 그 편지가 너희로 잠시만 근심하게 한 줄을 앎이라.”고 했습니다.

눈물과 사랑으로 쓴 편지이긴 하지만 나무람이 지나쳐서 오히려 그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높은 담을 쌓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사도 바울은 솔직히 걱정되고 후회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디도의 편에 그들이 뉘우치고 바울의 권면을 따랐다는 반가운 소식을 대하고는 자신이 괜한 걱정을 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근심을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10절 말씀에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는 육신적인 근심이 있고, 다른 하나는 영적인 근심입니다. 육신적인 근심은 세상적인 근심을 말하는 것이고, 영적인 근심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2. 근심 걱정은 주님에게 맡겨라

 

사도 바울이 말하는 세상 근심이 무엇입니까? 세상 근심이란 육신의 근심을 말하는데 이 근심은 우리에게 결과적으로 사망을 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삶을 파괴하는 쓰레기와 같은 것입니다. 생활하다 보면 쓰레기가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쓰레기를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욕심쟁이, 구두쇠라도 쓰레기는 내다 버립니다. 만약 쓰레기를 집에 그냥두면 온 집안에 악취가 진동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계속 마음속에 근심이나 두려움을 품고 있으면 잠 17:22절에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한 것처럼 마침내는 마음이 병들고 육체까지 병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사망을 가져다주는 세상적인 근심을 어떻게 물리칠 수 있습니까?

이런 근심은 인간적인 방법으로는 물리칠 방법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겨내야 하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께 우리의 근심과 두려움을 기도로 맡겨 버리는 것입니다.

 

벧전 5: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키라”고 했고, 시 37:5절에는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고 했으며, 시 55:22절에서는 “네 짐을 여호와께 맡겨 버리라 너를 붙드시리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마 11:28절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의 염려와 귀중한 것들을 우리 삶의 주인 되시는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주님은 맡긴 것만 책임져 주십니다.

지금 우리는 무슨 근심의 짐을 지고 힘들어 하고 있습니까? 큰 근심의 짐, 장래에 대한 불안의 짐이 여러분들의 어깨를 짓누를 때, 능력의 손을 벌리시고 기다리시는 하나님께 와서 그것을 맡기십시오. 때로 무엇인가 불안한 마음이 일거든 엎드리어 기도하고 주님의 능력의 손에 모두 맡기십시오. 그때 하나님이 좋은 길, 해결의 길, 쉼의 길로 인도하실 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세상 근심은 하나님 앞에 맡기고 대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시기 바랍니다.

 

3.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근심

 

성경은 우리에게 근심을 하지 말라 명하셨지만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근심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9-10절에 보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가?”라는 데서 생기는 거룩한 근심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와 허물에서 깨끗하게 될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일을 더 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를 이웃에게 더 잘 전할 수 있을까,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교회를 부흥시킬까, 어떻게 하면 우리 마음이 뜨거워지고 하나님께 보다 더 헌신할 수 있을까”를 염려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이 우리에게 사망을 주는 것이라면 이 영적인 근심은 우리로 회개케 하고 생명을 주는 조은 근심입니다. 세상 근심은 우리의 신앙생활을 침체시키고 하나님을 떠나는 생활이 되게 하지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생명에 활기와 생명력을 얻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 10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는 회개를 이룬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회개하는 마음은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값진 선물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가장 값진 것이 있다면 그리스도의 피로써 회개한 우리의 마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회개는 저절로 우리의 마음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에는 반드시 회개라고 하는 열매를 맺습니다. 성령께서는 이 같은 근심을 통해서 우리로 회개의 역사를 이루게 하시고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회개하면 새 힘을 주십니다. 회개하면 새로운 능력을 주십니다. 그래서 성령으로 새롭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5장 4절에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여기서 "애통하는 자"는 사도 바울이 말씀하는 "하나님의 뜻대로 근심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함을 애통하는 자요, 하나님의 진리를 발견하지 못하여서 애통하는 자입니다. 이러한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위로로 함께 하시어 회개케 하시고 구원을 이루십니다.

 

오늘 본문 11절에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증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그 일에 대하여 일체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한마디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우리의 마음을 간절하게 합니다. 그리고 자백하게 하고, 뉘우치고 한탄하게 하며, 주님을 대함에 두렵게 하고, 복음 증거를 사모하게 하고, 주님의 일에 열심 있게 하고, 우리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고 벌하게 합니다. 이로써 우리 자신이 깨끗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세속적인 근심, 쓰레기에 불과한 근심은 하나님의 능력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고 대신 오직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려는 거룩한 근심의 짐을 져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 6:33절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너희 자신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할 것이 많을지라도 하나님께 다 맡기고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러면 이 모든 의식주 문 제, 인생의 문제를 다 채워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네 인생의 짐은 내가 맡을 터이니 너는 내 나라 사업의 일부를 맡으라.”는 것입니다.

 

결론

 

사도 바울은 매일의 삶 속에서 근심할 일이 많았습니다. 전도하면서 일행의 경비를 위해서 매일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해야 했고, 몸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아야 했습니다. 그런데다가 많은 반대자들로 인해 언제나 생명의 위협을 느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을 보십시오. 그 인생의 지친 무거운 짐은 다 주님의 능력에 손에 맡기고 오직 복음 전하는 일에 전력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행 20:23-24절서 고백합니다.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고 했습니다.

내 인생의 짐은 하나님께 맡기고 대신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힘쓸 때에 놀랍지요. 내 인생의 짐은 저절로 벗겨지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 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우리는 근심할 수밖에 없는 연약한 그릇들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어떤 근심을 할 것이냐는 우리의 마음과 믿음에 달렸습니다. 백해무익한 세상 근심으로 찌들려 살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근심으로 충성된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이냐를 결정해야 합니다.

우리 모든 만나인들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 만나인의 마음속에 불일 듯 일어나 언제나 하나님 앞에 쓰임을 받는 믿음의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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