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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신앙생활의 3원칙

by 이덕휴-dhleepaul 2021. 4. 25.

날자: 2021년 4월 25일 주일 낮 예배

말씀: 살전5:16-18

제목: 신앙생활의 3원칙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1. 항상 기뻐하라

잠언 17장 22절은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염려와 근심이 바로 우리 마음을 피폐해지게 만듭니다. 세상에 근심걱정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대통령도 부자도 철학자도 심지어 목사도 염려와 근심은 있습니다.

오죽했으면 주님께서 세상 짐을 내게로 가져오라고 했겠습니까? –

마 11:28~30

수고하고무거운짐진자들아다내게로오라내가너희를쉬게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나의멍에를메고내게배우라그리하면너희마음이쉼을얻으리라. 이는내멍에는쉽고내짐은가벼움이라하시니라.

그러므로 성경은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벧전 5:7)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 여러가지 이유 중에 가장 우리의 삶과 직결되는 세상 걱정거리 근심거리 염려거리를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는 특권을 가진 것은 그리스도인의 특권 중에 가장 큰 특권입니다.

그런데 염려를 맡기는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입니까? 기도입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늘 기도를 통해 염려를 주님께 맡겨놔야 되는 것입니다.

성경 욥기 1장 21절에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야훼시요 거두신 이도 야훼시오니 야훼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라고 욥이 고백합니다. 사탄은 고난당하면 욥이 하나님을 욕할 것이라고 큰소리를 쳤습니다. 그러나 욥은 찬송을 통해서 원망과 불평을 이긴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은 마귀의 전략입니다. 마귀는 불평과 원망을 통해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이 습관이 되면 우리의 삶을 파멸시키고 마는 것입니다. 불평과 원망을 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우리를 제일 확실하게 죽이는 독이라는 것을 알아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어서 불평과 원망이 나오려고 하거든 감사와 찬송을 부르십시오. 그러면 마귀가 떠나가고 영혼이 잘됨 같이 범사에 잘되고 강건한 복이 임하게 되는 것입니다.

웃음은 웃는 자도 웃음을 듣는 자도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시편 16편11절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 앞에는 큰 기쁨이 있고 오른편에는 즐거움이 있다고 하니깐, 주님께 더 가면, 근처에만 가도 기쁨이 넘치고 행복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웃는 자는 웃음이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2.쉬지말고기도하라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참으로 기뻐하는 말씀 중에 말씀입니다. 남광주 나환자 병원 정원에 가면 돌비석에 오늘의 말씀이 영문으로도 쓰여있고 한글로도 쓰여 있어서 내가 그 병원에 피부병 약을 타러 갈 때마다 읽으면서 감사와 은혜를 느끼는 말씀인데 어제는 이 말씀이 새겨진 액자를 가져왔습니다. 오늘의 말씀의 주제가 되라는 주님의 부탁이었을 것으로 믿고 이 말씀을 선포하게 되어서 참으로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말씀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할렐루야!!!

기도는 찬송과 더불어서 박자를 맞추면 효과가 크게 나타납니다. 빌립보 감옥에 바울과 실라는 박자 있는 기도를 했습니다. 통성으로 기도하고 난 다음에 찬송을 부르고 박자를 맞춰가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니 예배 효과가 굉장했습니다. “한밤중에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이에 갑자기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행 16:25~26) 지진이 나니까 우연히 문이 열리고, 쇠고랑이 풀리고, 수갑이 풀려났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어날 수 없습니다.

빌립보서 4장 6절로 7절에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라고 말씀합니다. 마음에 불안한 것은 다 귀신의 일인 것입니다.

시편 28편 6절로 7절에 “야훼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 야훼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내 노래로 그를 찬송하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 일반적인 기도를 할 뿐 아니라 찬송을 부르면 하나님이 크게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3.범사에 감사하라

(눅17:11-19)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실 때에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12)한 마을에 들어가시니 나병환자 열 명이 예수를 만나 멀리 서서 (13)소리를 높여 이르되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14)보시고 이르시되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그들이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15)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9)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 나병환자 10명 모두가 다 고침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께 돌아와 나병이 나은 사실에 먼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님께 절을 하며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강도만난 이웃을 구해 주었던 사람도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은 항상 이방인들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16)예수의 발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17)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18)이 이방인 외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가 없느냐 하시고 15-18절)"

감사는 믿음의 완성입니다(누가복음 17:11~19)

“사랑보다 감사 먼저!” 이는 감사 신학의 출발 선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감사는 사랑의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사랑의 의무를 행하기에 앞서 감사 고백이 먼저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셨고, 우리는 그 은혜를 통해 거듭난 영적 존재가 되었다. 이 확신이 있다면 감사 고백은 저절로 따라 나올 것이다. 이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대한 감사 고백이 우리 존재의 시작임을 말해 준다. 한 마디로 하나님이 인간보다 먼저 계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다. 그 사랑에 대한 우리 응답이 바로 감사다. 사랑 실천은 그다음이다. 감사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뿐이다.

감사의 7가지 언어

대가 없이 받았음에 감사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아쉬움을 다스리는 감사 “지금 모든 것이 충분합니다” 유혹을 해결하는 감사 “철저히 따르겠습니다” 비난과 비판을 이기는 감사 “깨끗이 씻어 버리겠습니다” 불의함에 도전하는 감사 “모두 받아들이겠습니다” 다시 일어나는 감사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주어진 모든 상황에 감사 “모든 감사는 오직 하나님께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 대한 뜻인데, 감사는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문제인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범사에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감사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야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18) 하박국 선지자는 모든 것이 다 없을지라도, 자기는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겠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먹을 것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면 그는 만족한다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믿음이 없다면 오늘 일도 걱정하고 내일 일도 걱정하니 도무지 감사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마 6:34)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적극적으로 주님은 기도로 인생을 살도록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로 17절에 보면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아버지께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송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언하는 입술의 열매니라”(히 13:15)

마귀는 인간의 마음속에 부정적인 생각을 넣어서 유혹을 한다고 합니다.

첫째로, “나는 무능하다”라는 생각을 집어넣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하도록 만듭니다. 거기에 넘어진 신자를 마귀는, 둘째 “이제 다 끝났다” 이와 같은 생각을 집어넣어 주어서 미래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만듭니다. 셋째 단계는, “나는 하나님께 사랑받을 자격이 없다. 나는 버림받은 자다.”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어서 모든 희망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절망의 근원은 마귀에게 있습니다. 마귀가 절망을 우리에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잠언서 18장 20절 21절에 보면 ‘사람은 입에서 나오는 열매로 말미암아 배부르게 되나니 곧 그의 입술에서 나는 것으로 말미암아 만족하게 되느니라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나니 혀를 쓰기 좋아하는 자는 혀의 열매를 먹으리라’ 절망을 말하면 사망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입니다.

결론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통해 모든 절망을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희망을 꿈꾸고 말할 수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꿈꾸고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 희망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이 마귀의 일인 것인데, 사람들은 대개 큰 시련을 당할 때 “이제 다 끝났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그렇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다 끝났다”가 아니라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해야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에겐 아직 기도가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기도할 수 있는 한 끝난 것이 아닙니다. 기도가 끝나야 만사가 끝난 것입니다. 기도할 수 있으면 아직 늦지 않은 것입니다.

희망을 주는 말이 “아직 늦지 않았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언제나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개입하셔서 문제를 해결하시고 길을 열어 주시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까지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꿈이 있습니다. 큰 꿈도 있고, 적은 꿈도 있습니다. 꿈이 없으면 절망입니다. 그러나 꿈이 있는 사람은 희망이 있고, 즐거움이 있습니다. “너는 무슨 꿈이 있느냐?”고 여러분 종종 여러분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큰 꿈 아니라도 적은 꿈이 있으면 희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여러분에게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약속의 말씀을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네 믿은 데로 될지어다.” 굉장한 자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생기찬 믿음의 선언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나는 할 수 있다. 일이 잘 된다.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다.” 입술로 고백하는 이런 것이 있으면 우리가 이 세상에 버림받은 사람이 되지 않고, 아직 늦지 않았다. 아직까지 늦지 않았으니까 좋은 일이 일어날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떠한 상황에 있다 할지라도 “끝났다”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끝났다”고 말하지 말고 “아직 늦지 않았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다시 일어나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십시오. 한 번 따라 말씀해주십시오. “나는 끝나지 않았다. 아직 늦지 않았다.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신다.” 하나님이 오늘 주신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아멘.

<기도>

사랑이 많으시고 은혜가 많으신 하나님, 마귀는 절망적인 생각을 통해 우리를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사망을 이기셨습니다. 승리하신 주님이 우리의 주님이심을 감사드립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겠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 영광 받아주시는 주님을 찬양합니다. 이 모든 말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