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1년 10월 3일
본문: 막4:26-34(마13:1-32, 눅8:5-15)
제목: 말씀의 씨를 뿌려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1. 들어가는 말씀
오늘의 본문은 주님의 말씀 중에 씨 뿌리는 비유의 말씀을 하십니다.
더러는 길가에 뿌려지고, 더러는 흙이 얇은 돌밭에 떨어졌으며, 또는 가시떨기에 떨어졌고, 마침내 기름진 밭에 떨어졌습니다. 기름진 밭에 떨어진 씨만 삼십 배 육십 배 백배의 결실을 얻었습니다. 이어서 10~20절에는 그 비유에 대한 설명이 나옵니다. 26~29절에 다시 씨 뿌리는 이야기가 나오고, 이어지는 30~32절에도 다시 씨와 결실이라는 비유가 나옵니다.
주님께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감당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놀라운 가르침을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주로 제자들과 비유를 들어서 하나님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차례대로 살펴보면서 은혜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2. 본문 내용살펴보기
1) 27절 말씀은 이렇습니다.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한 알의 밀알이 썩어지지 않으면 결실을 못 맺습니다.
나의 희생이 없으면 결코 얻어지는 것이 없다는 것이지요. 문제는 내가 썩어가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씨앗이 썩어가는 과정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그것은 자아독단에 몰입되는 것이지요
대개의 기독교인들이 세상에서 소금과 빛의 역할을 충실하게 감당해야 한다는 뜻이라면 그 말이 맞지만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세상에 건설할 수 있을 것처럼 주장한다면 그건 착각입니다.
지난 시간에 우리가 은혜받았던 말씀에서,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과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옵시고 라는 주기도문의 깊은 이해와 내용을 다시 한 번 더 새깁니다.
내가 하나님나라를 세우기 위해서 나는 내 몸을 썩혀야 한다는 주제 설정에서부터 빗나가버리는 믿음을 탈피해야 합니다.
나는 오직 주님의 말씀의 씨앗을 뿌리는 사람일 뿐, 그 열매를 거두시는 것도, 싹이 트는 것도, 어떻게 자라는 것도 모릅니다. 나는 뿌리고 아볼로는 물을 주되 자라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그런즉 심는 이나 물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고전 3:6-7)
이 말씀의 진가를 모르면, 자기가 하나님이 되는 줄 압니다. 이런 사람들이 많아지면 종말이 쉽게 옵니다. 할렐루야!!!!!
내가 말씀을 뿌리면서 그 말씀의 은혜를 자기가 가져가는 것입니다. 그 열매는 오직 하나님의 것이며, 그 상급은 종말에 빛을 발하게 됩니다. 할렐루야!!!
요즘 대장동이야기가 온 사회를 덮고 있습니다.
개발이익, 즉 열매를 누가 가져야 합니까?? 그것을 가로채면, 도둑놈이지요. 주님께서 말씀의 씨앗을 주시고 그 씨앗을 오직 나와 나의 동역자들을 뿌리고 물만 주면 됩니다. 거름도 주어야 합니다. 문제는 어떤 땅에 어떻게 뿌리고 살피고 거두어서 그 열매를 하나님 앞에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성서는 문제를 제시하되 해결방법은 잘 안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오늘의 말씀은 해결과정을 자세히 말씀하시니까 참 좋습니다. 저처럼 말을 잘하지 못하는 설교자에게 정말 좋은 말씀입니다. 할렐루야!!!
2) 30~32절에는 겨자씨 비유가 나옵니다.
겨자씨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작지만 자라면 새들이 깃들 정도로 크다고 합니다. 바울은 부활 문제를 설명하면서 씨를 언급했습니다. “어리석은 자여 네가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 …”(고전 15:38)라고 했습니다. 지금 살아가는 생명 형식은 씨와 같습니다. 이 씨는 죽어야만 합니다. 죽지 않으면 꽃이라는 생명을 얻지 못합니다. 죽음으로써 얻게 될 생명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생명입니다. 완전히 변화된 생명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고전 15:51, 52). 이 변화된 생명을 영생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시 살아나는 것을 부활이라고 합니다. 요한사도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요 11:23~27라고 하였습니다.
내가 뿌린 씨앗이 뿌린 그대로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집 텃밭에 심은 생강이 그렇습니다. 이게 싹이 나오지 않으면 새 생명이 나오지 않지요.
씨가 자기의 현재에만 묶인다면 꽃의 미래는 없습니다. 만약 태아가 어머니 자궁만을 고집한다면 그 태아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한 알의 씨가 썩어야만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두 번째 서신 5장17절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런 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치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cf. 롬6:4).
결론
오늘 배운 본문이 의도하는 것은 새 생명의 새로운 피조물로서 거두는 열매입니다. 나는 물론이거니와 우리가 행하는 모든 하나님의 선교사업의 최종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천국백성이 되게 하여야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뜻인 줄 압니다.
노자의 도덕경 26장에는 重爲輕根(중위경근) : 진중함(重)은 가벼움(輕)의 뿌리고,
靜爲躁君(정위조군) : 고요함(靜)은 조급함(躁)의 주군이다.
무거운 것이 가벼운 것의 뿌리가 된다는 것은 중후한 삶이 경박한 삶의 뿌리가 된다는 말이다. 경박한 삶은 눈앞의 일시적인 이익에 따라 울고 웃는 것을 말한다. 그러기에 멀리 보지 못한다. 하지만 인생을 가볍게 사는 것과 경박하게 사는 것은 구분되어야 한다. 무거운 인생길을 가볍게 사는 일이야 말로 도를 추구하는 자의 본래 모습일 수 있다. 예수가 일렀듯이,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고 하면서, 내가 주는 멍에는 쉽고도 가볍다고 했던 것에서도 알 수 있다(마 11:28~30).
쉽게 뿌려진 씨앗은 쉽게 버림받되 힘들고 어렵더라도 토양을 바르게 하여 뿌린 씨앗은 잘 자라서 하나님께서 곳간에 거두십니다. 누가복음 13:31-33절을 함께 봉독하면서 이 시간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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