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자: 2023.04.09 부활주일 낮 예배
제목: 첫 열매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말씀: 고전15:3~4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 들어가는 말씀
오늘은 주님의 부활하신 날입니다. 본문말씀 :고전15:3~4절을 함께 봉독합니다.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예수님의 부활은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에 따라 성취된 것임을 사도바울은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번째 서신에서 성경대로 … 성경대로 … ’라고 반복해서 강조합니다. 성경의 알파와 오메가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님에 대한 예표이고 신약은 그 성취의 내용을 다룬 말씀입니다. 이런 예언과 성취를 통해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 그리스도임을 확실히 증거합니다.
그런데 그 당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믿지 않으려고 했습니다. 심지어 믿지 못하게 방해하는 마귀들이 있었습니다. 항상 말씀드리지만, 마귀는 뿔난 짐승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정하는 무리들입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활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본주의적이 사고방식, 즉 철학자들의 시각으로 주님의 영성계획을 비난하는 자들이 고린도 교회에 만연되었던 것이지요.
소위, 시체 도난설, 환상설, 가사설, 무덤오인설, 신화설 등 별의 별 가까 뉴스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런 데 휩쓸려 의심하는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목격자들이 차고 넘친다! 직접 찾아가서 확인해 봐라! 그게 바로 고전15:5~8에 기록된 목격자 리스트입니다. 그 중에 자신도 포함된다고 증거합니다.
롬1:3~4 “3 그의 아들에 관하여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누가복음 24장 1~9절에 “안식후 첫날 새벽에 이 여자들이 그 예비한 향품을 가지고 무덤에 가서 돌이 무덤에서 굴려 옮기운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뵈지 아니하더라 이를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여자들이 두려워 얼굴을 땅에 대니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갈릴리에 계실 때에 너희에게 어떻게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르시기를 인자가 죄인의 손에 넘기워 십자가에 못 박히고 제 삼일에 다시 살아나야 하리라 하셨느니라 한대 저희가 예수의 말씀을 기억하고 무덤에서 돌아가 이 모든 것을 열 한 사도와 모든 다른 이에게 고하니”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 20절에서는 또 이렇게 증거합니다. 고전15:20 “
그리스도가 잠자는 자들의 첫열매가 되셨다는 선언은 성도들이 죽음에 관해서 획기적인 관점의 변화를 가지라고 하는 요구입니다. 이 말씀은 성도의 죽음에 대해서 두가지 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고 안식을 의미하며, 새로운 차원에서 일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죽으면 고통이 올 것이고 모든 것이 다 사라질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도바울은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조심할 것은 앞에서 말씀드렸지만,
기독교 역사에는 영혼수면설 혹은 영혼멸절설이라고 하는 이단 사상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영혼수면설은 사람이 죽으면 영혼은 의식이 없이 존재한다는 사상입니다. 또 영혼멸절설은 사람은 죽으면 영혼이 멸절되어 없어진다는 이론입니다.
이것은 16세기의 아나뱁티스트들이나 아니면 20세기의 여호와의 증인, 안식교와 같은 이단들이 믿고 있는 사상으로 이미 이단으로 정죄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다”라는 말은 의식이 없다고 하는 얘기가 아닙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천국에 가서 하나님보좌 앞에서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을 찬양하기도 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죽음이란 잠자는 것이다” 하는 것은 수고를 그치고 안식한다는 의미입니다. 수고도 고통도 슬픔도 질병도 없는 상태에서 지극한 행복감 가운데 안식하는 것이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살다가 죽는다고 하는 것은 안식으로, 행복으로 들어가는 것이지 어두운 세계로 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잠을 자는 것은 목적이 있습니다. 사람이 잠잘 때 죽어야지, 없어져야지 하고 자지 않습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힘을 얻어서 다시 아침에 일어나기 위해서 자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안식하는 성도의 영혼은 다시 육신을 입어 생명의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가리켜서 바울은 잠을 잔다고 표현했습니다. 성도의 죽음은 잠자는 것입니다.
둘째, 성도의 죽음이란 “씨를 심는 것(Sowing)”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첫 열매라고 했습니다. 열매가 있기 위해서는 씨를 심는 것이 있어야 됩니다. 그러므로 죽음이란 씨를 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36절에 “어리석은 자여 너의 뿌리는 씨가 죽지 않으면 살아나지 못하겠고”라고 기록되었습니다. 죽음이란 우리의 육신을 심는 것입니다. 육신은 연약해 나이가 들면 늙어갑니다. 그런데 이 육신을 심는 것입니다. 심으면 우리는 썩지 않는 영광스럽고 강하며 신령하고 죽지 않는 몸으로 다시 살아 열매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죽음은 그 과정 가운데 하나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42절로 44절에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라고 기록되었습니다.
1. 예수 부활의 의미
예수님의 부활은 장차 성도들도 부활할 것을 보증하는 메시지입니다.
18세기에 영국의 유명한 시인이었던 길버트 웨스트(Gilbert West)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한 때 성경을 믿지 않는 지독한 불신자로 기독교를 공격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기독교를 공격하려면 기독교의 핵심진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공격하면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부활이 없다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믿음도 헛것이요 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증인으로 발견되리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활을 부정한다면 기독교의 모든 것이 다 헛것이 되고 기독교는 무너지겠다는 반기독교적인 편견을 가지고 그리스도 예수님이 부활하지 아니하셨다는 증거를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자료를 수집하고 연구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이 부정할 수 없는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가 기독교로 개종하고 1747년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한 역사와 증거에 관한 관찰’이라는 위대한 책을 저술했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증거는 그의 불신앙을 압도하고 나아가 교정할 만큼 충분히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육신의 부활은 부정하고 공격하려고하는 목적으로 연구해도 결국은 굴복할 수밖에 없는 검증된 진리요 논쟁의 여지가 없는 진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자 가운데서 삼일만에 부활하셔서 최소한도 열두 번 이상 제자들에게 부활의 몸을 보이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몸을 보여주셨고 사역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본 사람들을 살펴보면;
① 막달라 마리아가 처음 만났습니다.(부활절 새벽)
② 여인들이 만났습니다.(부활절 새벽)
③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만났습니다.(부활절 오후)
④ 베드로도 만났습니다.(부활절 오후)
⑤ 도마가 빠진 열 제자가 만났습니다.(부활절 오후)
⑥ (8일일만에) 열 한 제자가 만났습니다.
⑦ 일곱 제자가 만났습니다.(갈릴리호수)
⑧ 열 한 제자가 만났습니다.(갈릴리에서)
⑨ 오백여 형제가 만났습니다.(감람산에서)
⑩ 예수님의 친 동생 야고보도 만났습니다.
⑪ 승천하기 전 예수님의 제자들이 만났습니다.(부활 후 40일)
⑫ 마지막으로 바울이 다메섹 가까운 길에서 만났습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고, 대화했고, 음식도 나눠 먹었고, 승천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아마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사람까지 포함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은 엄청나게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다는 것과, 십자가에 죽으신 주님이 3일 만에 부활하신 것은 부인할 수 없는 기정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초대교회부터 시작해서 복음을 전할 때 그 핵심은 <십자가와 부활>이었던 것입니다. 기독교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은 그 누구도 바꿀 수 없는 사실이었습니다.
고전15:21~22 “21 사망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한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22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인류의 첫 사람 아담의 실수 아닌 죄 때문에 후손된 모든 사람이 죄인으로 태어나 대를 이어 죄를 짓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셨습니다;(요 3:17) 예수님의 부활사건으로 모든 사람들이 구원받고 영생을 얻게 됐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사람만 구원받는 선택적 부활입니다.
고전15: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예수님이 먼저 부활하셨고, 나중에 예수 재림의 때 예수님에게 소속된 사람이 부활합니다. 성도는 믿음으로 예수님과 하나된 사람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시기 위해 부활하신 것입니다.
2. 예수 부활은 성도들의 부활의 예표
예수 부활은 성도의 부활체가 어떤 모습이 될지를 보증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몸은 아주 새롭고 신기한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은 우리가 장차 부활한 몸에 대해 예시해 줍니다. 마치 이런 겁니다. 어떤 제품을 만들어 시판할 때 샘플을 보여줍니다. 샘플 화장품 같은 것 생각해 보시면 이해가 될 겁니다. 혹은 모델하우스를 생각해도 이해가 되실 겁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성도들이 장차 어떻게 부활할 것인지를 보여주는 샘플이 되심을 의미합니다. 바울이 빌3:21에서 이렇게 증거합니다. “그는 ( … )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사람이 죽으면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 육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전12:7). 그러나 첫 열매되는 주님처럼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흙으로 돌아갔던 육체가 새 옷을 갈아입듯 부활의 몸으로 나타납니다..눅24:36~43를 보면, 제자들이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이 홀연히 한 가운데 나타나신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그들은 유령인 줄 알고 깜짝 놀랐습니다. 예수님은 못 자국이 난 손을 보여주시고 또한 갈릴리 호숫가에서는 그들이 보는 데서 구운 생선 한 조각을 잡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15:42~44에서 부활체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이 부활의 신앙은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게 합니다. 가난하면 가난한 대로, 풍부하면 풍부한 대로, 비천하면 비천한 대로 받아들이며 오직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감사하고 기뻐하며 그 믿음의 길을 살아가게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찬란하고 영광된 부활의 세계를 믿음의 눈으로 보며 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사는 것이며, 몸의 부활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를 늘 부활의 능력안에 있게 합니다.
이 부활을 믿지 않는 사람은 오직 자신을 위해 먹고 마시고 즐기며 방종의 인생을 살지만, 부활의 믿음을 가진 우리는 지금 현재의 삶이 결코 무의미한 삶이 아닌 것을 알기 때문인 것입니다.
비록 이 땅에 살지만 부활의 소망을 가진 자로서 부활의 세계가 있음을 우리의 삶을 통해 세상에 보여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부활의 믿음을 가진 자의 모습입니다.
부활의 신앙은 부활의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살기에
나의 삶의 어떤 형편과 처지에 따라 변하지 않고
주어진 상황과 어떤 형편에서도 감사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3. 예수 부활은 성도의 승리
예수 부활은 성도의 승리를 보증합니다. 우리가 세상 살 동안 얼마나 많은 고난과 시험을 당합니까! 수많은 우여곡절이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결코 패배하지 않습니다. 사망 권세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 함께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확정된 승리요 궁극적인 승리입니다. 고전15:51~52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재림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을 살아서 맞이하든 죽어서 흙으로 돌아가 있다가 맞이하든 홀연히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가 사는 동안 끝없는 고난 가운데 시름하는 것은 결국 사망 권세와 사탄 권세입니다. 사도는 말합니다.
고전15:5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고난을 당한다 할지라도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하지 않습니다. 혹시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고 결국은 승리합니다. 잠24:16 “대저 의인은 일곱 번 넘어질지라도 다시 일어나려니와 악인은 재앙으로 말미암아 엎드러지느니라” 또한 잠14:32 “악인은 그의 환난에 엎드러져도 의인은 그의 죽음에도 소망이 있느니라”라고 하였습니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겨울이 되면 다 죽어버린 것같은 우리 감나무가 고목같아 보이지만 오늘 아침 보니까 놀라운 생명력으로 다시 새 순을 뽑아내기 시작합니다. 우리 감나무입니다. 만나의 감나무지요. 해마다 새로운 가지를 냈고 꽃을 피우고 싱싱한 열매를 맺습니다. 벌써 매실은 눈꼽탱이 만큼 생겨나와 자라고 있습니다. 우리모두는 봄의 새 생명처럼 부활이요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는 동안 언제나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약속하십니다.
맺음
고린도전서 15장 58절 (고린도전서15:58 / 고전 15:58)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여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부활 신앙을 믿지 않은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손 안에 든 죄인들" 이라는 제목의 명설교로 이름을 날린 조나단 에드워드 목사의 말씀 중에
“복수와 보응이 내게 속해 있으니, 그들의 발은 정해진 때에 실족하리라. 그들의 재앙의 날이 가까우니, 그들에게 임할 일들이 속히 되리라.”(신 32:35)
하나님의 공의는 항상 살아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언제라도 죄인들을 멸망시키는 것에는 어떠한 반론도 있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공의는 죄인들에 대한 철저한 응징의 심판을 큰 소리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오늘 부활절을 맞이하여 우리 만나교회 백성들은 다시 한 번 더 주님의 부활과 우리 만나인의 부활신앙을 깊히 깨달아야 합니다. 나의 발이 죄와 심판의 널빤지 위를 걷고 있는지, 영생의 부활을 믿고 의지하고 오직 주 안에서 하나되는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지, 스스로 기도하면서 참회하고 참회하면서 진실로 주님의 거룩한 길을 걷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믿음의 거울을 빤짝빤짝하게 닦고 나의 심령을 신령한 믿음 속에 담궈야 합니다. 잘 담귀진 빚과 소금의 (짱아찌) 믿음은 찌는듯한 여름에도 쉬지 않습니다. 영원히 변치 않습니다. 간간하게 맛있고 변하지 않는 믿음의 빛과 소금의 짱아찌가 됩니다. 믿음의 짱아찌가 되시는 만나인 되시기를 부활하신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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