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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학)문

하나님의 도를 따르라

by 이덕휴-dhleepaul 2023. 11. 26.

날자: 2023.11.26 주일 낮 예배

말씀: 고전1:24-25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제목: 하나님의 도 = 십자가의 도를 따르라

선포: 대한예수교장로회 만나교회담임 이덕휴목사

 

요절: 24절 -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 에게는 유대인 이나 헬라인 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 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 고린도교회의 분쟁

11절 말씀을 보면, “내 형제들아 글로에의 집 편으로 너희에 대한 말이 내게 들리니 곧 너희 가운데 분쟁이 있다는 것이라”

 

여기에 보면, 사도 바울은 글로에 집 사람들을 통해 고린도교회 안에 있는 분파와 분쟁에 대해 들었던 것 같습니다. 어떤 사람들이 각기 자기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의견이나 생각을 무시하면서 말다툼이 일어나고 서로 마음에 상처를 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교회를 흔들어 놓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틈, 교회를 무너뜨리는 사단의 전략이 바로 분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보면, 교회는 세상의 권력이나 핍박으로는 무너지지는 않았습니다. 수없는 박해가 일어났지만 교회는 여전히 건재하고, 수많은 철학과 이단들이 교회를 공격했지만 교회는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하나님이 세운 신적인 기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스스로 부패하고, 스스로 분쟁하게 되면, 그때는 무너지고 마는 경우가 역사적으로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현재 우리 가까이 있는 교회 중에서도 분쟁함으로 그 힘을 잃어버리고 교회 자체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 오늘의 본문 말씀

 

1. 십자가의 도를 따르라

 

인간 세상의 분쟁은 주의 길을 벗어나는 행위입니다.  주 안에서 서로 기뻐하고 기도하고 위로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투지 아니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교회 내에 분쟁이 생겼다는 것은,  십자가의 도를 알지 못하고 오직 인간의 지혜와 능력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기 때문에 교회 내에서 분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 하면서도 말의 지혜에 지나치게 몰두하느라 그만 십자가를 헛되게 하고 말았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에 말의 지혜로 하지 않고 십자가의 도를 전했음으로 강조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란 문자적으로 ‘그 십자가의 말씀’이라는 의미입니다.

 

말의 지혜를 좇는 사람들은 그 십자가의 말씀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 말씀을 미련한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 됩니다. 십자가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능력에 해당하는 헬라어 단어는 ‘뒤나미스’입니다. 다이너마트와 같은 폭발력이 있는 폭탄처럼 터지는 능력을 말합니다.

 

뒤나미스는 영적, 정신적, 육적 능력을 모두 아우르는 총체적인능력을 말하며 폭발적인 생명력을 말하는 단어입니다.

멸망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십자가란 그저 미련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지만,  구원을 얻고 있는 우리에게는 십자가의 도는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자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의 능력으로 지금 당장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고난을 받으셨지만, 3일 후에 부활 승천하시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십자가의 도를 상징직으로 나타내는 우리 기독교 신앙의 알파요 오메가인 것입니다. 아 멘

 

2. 전도의 미련한 것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지혜로 구원을 얻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절대적인 지식과 지혜란 존재하지 않으며 덧없이 사라지는 헛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수 있는 자가 인간 중에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지혜있는 자, 선비, 변론자가 다 나서도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만한 사람은 없습니다. 지혜있는 자란 지혜를 추구하는 헬라인을 겨냥한 단어입니다. 율법의 지식을 추구하는 유대인들을 겨냥하는 말이지요. 이 세대의 변론가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가릴 것 없이 자신의 이성과 지식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허망한 자들을 일컫는 용어입니다.

 

고린도 교회에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모두 존재하고 있었고, 각자가 잘난 척 교만하다가 분쟁을 하고 있으므로 모든 인간의 지혜가 우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하게 하셨습니다. 세상은 모든 지혜를 발동해도 자기 자신 하나 구원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동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도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모든 인간에게 구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 편에서 모든 인간을 구원할 지혜를 발동하신 것이지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롬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우리가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사랑받은 게 아닙니다.

내가 죄로 인해 죽을 수밖에 없는데도 불구하고

나를 위해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죽게 하실 정도로 나를 사랑하셨습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받은 자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자는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 십자가 사랑을 받은 자는 성령님을 온전히 의지하고 사모하면서

다스리심을 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3. 어리석은 인간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 안에 살아가면서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피조세계에 하나님의 지혜를 담아두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 안에 살고 있으면서도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눈이 먼 사람은 빛에 둘러 싸여 있으면서도 어두움 속에 있는 것처럼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에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하나님 없이, 하나님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그러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므로 영이 아니고는 하나님을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오직 믿는 자들만이 하나님을 알 수 있고 십자가의 도를 통해 구원에 이를 수가 있습니다. 전도란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행위일 뿐 아니라, 선포의 내용을 모두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모두 전하는 말이자 행위입니다.

 

즉 바울이 전한 복음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복음이란 그저 미련한 것으로 여겨질 뿐입니다. 그러나 믿음 안에 서서 그 말씀을 듣고 믿는 자들은 복음 안에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발견하게 되는 줄을 믿습니다. 할렐루야~~~~

 

- 결론: 인간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십자가의 도

 

사도바울의 복음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러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믿지 못하였습니다. 보지 않고 믿는 자는 복이 있다고 하신 말씀을 유대인들은 유대인대로 이방인들은 이방인대로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각자의 이유가 있었습니다.

 

유대인은 늘 표적을 구했습니다. 표적이란 그리스도라는 증거가 될만한 기적을 말하는 것입니다. 징표를 바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이 되어 오셨다는 말부터 그들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개념입니다. 인간을 대신하여 죽는 신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십자가가 구원의 개념이 되는 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준다니 이해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지요.

 

사람의 지혜로는 이해할 수 없는 십자가의 도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입니다. 복음은 오직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만 제한적으로 허락된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은 대속의 죽음을 통해 구원을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지혜임과 동시에 부활을 통해 부활의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은 하나님의 지혜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부르심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 사실을 받아 들일 수가 없습니다. 자연인인 사람은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받아 들이지 못합니다.

 

우리는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를 깨달을 수 있도록 하여 우리에게 믿음을 주셨고, 사람이 할 수 없는 능력으로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만나의 성도는 하나님께 온 몸과 마음과 뜻을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승리하는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도 우리 만나인을 위하여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살전5:16-18입니다. 함께 봉독하면서 예배를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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